[살며 사랑하며-김진애] ‘갑질’에 대항하는 ‘을질’

입력 2015-01-19 02:20

‘갑오년에 갑질을 싫도록 봤으니, 을미년에는 제대로 을질 하자’라는 한 누리꾼의 글을 보고 웃기면서도 슬픈, 속칭 ‘웃프다’ 느낌이 들었다. 오죽 갑질 추태를 많이 보았으면 이런 말이 나오겠는가? ‘땅콩 회항’ 사건으로 절정에 이른 갑질에 한탄이 나옴직하다.

갑질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서열문화, 불평등 구조, 특권·특혜·반칙 구조는 요즘과 같은 경제 독식과 권위주의 퇴행 풍토를 타고 온갖 갑질을 더 부추길 것임에 틀림없다. 다만 대중의 거부감이 심하게 표출되고 있고 언론에 적신호가 들어왔으니 조금 잦아들기는 할 것이다.

갑질을 없애는 근원적인 대책은 우리 사회에 프로페셔널 책임 풍토가 일상화되는 것이다. 갑은 갑의 책임을 제대로 지면서 권한을 행사하고, 을은 을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며 책임을 지는 풍토가 필요하다. 갑질은 책임 없이 권한을 행사할 때 특히 공적 권한을 넘어서서 권한을 은밀히 사유화할 때 비롯되니, 갑의 공적 책임을 명확히 하면 할수록 갑질이 들어설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만드는데 을질의 역할이 있다.

물론 ‘제대로 을질’을 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권력 구조에서 갑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을 넘어서서 분야로, 직능으로, 직업군으로서 프로 윤리를 세워나가는 행동이 절대 필요하다. ‘업무의 정의, 시간과 보상체계’에 대한 요구는 물론이고 ‘갑의 책임에 대한 요구’를 바로 세우는 풍토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갑질이 승하는 사회는 바르지도 못하고 안전하지도 못하고 흉해지고 썩어들어간다. 공적인 약속이 무너지고 인간에 대한 예의가 무너지며, 약육강식과 착취가 횡행하고 거짓과 은폐가 만연하게 되고, 결국은 사회 전체적으로 사악한 기운을 만든다. 누가 바로 일하려 할 것이며 누가 용기를 내려 할 것이며 누가 도전하려 할 것인가 말이다.

누구나 갑이 될 수도, 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인간사회란 끊임없는 갑을 관계에 의해서 지탱된다는 사실을 직시하자. 사회가 복잡다단해질수록 바른 공적 관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잘못된 갑질에 대항하는 바른 을질이 흥하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 용기를 내자!

김진애(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