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중앙은행이 예상치 못한 대형 ‘환율사고’를 쳐 세계 외환·금융시장이 출렁거렸다. 스위스발(發) 환율 충격에 코스피지수도 1.36% 급락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스위스 중앙은행은 유로화 대비 스위스프랑(CHF)의 가치 급등을 막기 위해 2011년 9월 도입했던 환율 하한선(1유로당 1.20CHF)을 폐기했다. 그동안 환율 하한선이 위협받을 때마다 유로화를 매입해 방어해왔는데, 최근 유로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자 환율 방어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럽중앙은행(ECB)이 오는 22일 통화정책회의에서 추가 양적완화를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환율 하한 폐기의 원인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분석했다. ECB가 양적완화로 대규모 ‘돈 풀기’에 나서면 유로 가치가 더 떨어지고 안전자산인 CHF 가치는 더 오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환율 하한선을 지키려면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데, 스위스 중앙은행은 이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 ‘백기’를 든 것이다.
이런 깜짝 조치로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였다. 스위스 중앙은행은 CHF 강세를 최대한 완화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현행 -0.25%에서 -0.75%로 0.50% 포인트 내리는 극약처방까지 내놨지만, 유로화 대비 CHF 가치는 이날 장중 한때 30% 이상 급등했다. 반면 유로 가치는 급락했다. 달러·유로 환율은 2003년 11월 이후 최저치인 유로당 1.15달러까지 떨어졌다가 1.16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불확실성이 커지자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져 금 가격은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전날보다 30.30달러(2.5%) 오른 온스당 1264.80달러로 4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엔·달러 환율은 장중 115.8엔까지 하락했다.
스위스 주가지수는 14% 떨어져 1989년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뉴욕 증시도 하락했지만 유럽 주요 증시는 ECB의 부양책 전망이 확실해지면서 크게 올랐다. 스위스의 조치로 런던의 증권사 알파리와 뉴질랜드의 환전소 한 곳이 문을 닫았다. CHF 표시 채권을 많이 발행한 폴란드는 직격탄을 맞게 됐다. 폴란드 총 부채의 14.6%, 가계부채의 37%가 CHF 표시 부채인 것으로 추정돼 CHF 가치가 30∼40% 급등하면 그만큼 빚도 늘어난다고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16일 보도했다. 스위스 최대은행인 UBS는 최저환율제 폐지로 수출·관광업 경쟁력이 크게 악화되면서 스위스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8%에서 0.5%로 축소했다
스위스 충격파는 한국 증시에도 전해졌다.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확산돼 외국인 투자자가 ‘팔자’에 나서면서 코스피지수는 1900선 아래로 추락했다. 16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26.01포인트(1.36%) 내린 1888.13에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11.3원 내린 급락세로 출발했으나 오후 들어 낙폭이 줄어 6.0원 내린 1077.3원에 거래를 마쳤다.
강현철 NH투자증권 투자전략부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안전자산 선호도가 높아진 가운데 이번처럼 시장에서 전혀 몰랐던 요인이 나오면 불안이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며 “국내 증시가 안정을 찾으려면 기업 실적이 나오고 유가가 바닥을 찾을 수 있는 다음달 중순은 넘겨야 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천지우 정건희 기자 mogul@kmib.co.kr
스위스 환율 방어 포기 충격파… 글로벌 금융시장 출렁
입력 2015-01-17 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