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폭력 근절 대책] 화난 여론에 고민 없이 급조… ‘채찍’만 잔뜩 내놔

입력 2015-01-17 02:57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6일 서울 강서구 육아종합지원센터 내 어린이집을 방문해 간식을 먹는 어린이들 눈을 맞추며 얘기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새누리당과 보건복지부가 16일 발표한 어린이집 아동폭력 근절대책은 ‘원 스트라이크 아웃’ ‘CCTV 의무화’ 등 자극적·선정적인 내용이 중심이다. 화난 여론에 맞춰 대책을 급조하다 보니 법 조항 일부만 바꾸면 되는 ‘손쉬운’ 방안들로 구성됐다.

◇채찍 중심 대책 효과 있을까=당정은 어린이집 폭력 근절 대책에 ‘채찍’을 잔뜩 집어넣었다. 한 차례라도 보육교사 폭력이 일어나면 어린이집 간판을 내릴 수 있게 했다. 폭력을 휘두른 보육교사뿐 아니라 원장에게도 책임을 물어 다시는 어린이집을 운영하지 못하게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심지어 사법적 판단이 나오기 전이라도 어린이집을 폐쇄할 수 있는 ‘즉시 처분’ 조항도 생긴다.

그간의 어린이집 폭력 방지책 역시 처벌 강화 위주로 전개됐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아동을 학대한 전력이 있는 사람을 10년간 어린이집에 취업하지 못하도록 한 것도 불과 1년8개월 전인 2013년 5월이다. 하지만 인천 어린이집 사건에서 드러났듯 폭력은 되풀이되고 있다.

CCTV 설치 의무화도 폭력을 방지하는 ‘만병통치약’이 되기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CCTV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한 폭력을 100% 막기는 힘들다. 신체적 폭력을 감시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언어적·정서적 폭력까지 CCTV가 가려낼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한 어린이집 원장은 “CCTV의 존재는 보육교사를 위축시켜 아이를 돌보는 데 소극적이 되게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어린이집 4만3700곳 가운데 약 21%인 9081곳에만 CCTV가 설치돼 있다.

국회가 CCTV 설치 의무화를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한다. 어린이집 단체들이 지금은 숨을 죽이고 있지만 실제 법 개정 과정에서는 ‘표’를 무기로 국회를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법이 원래 취지와 다르게 변질되거나 각종 예외조항이 붙을 수 있다. 국회 새누리당 홍지만 의원이 CCTV 설치 의무화를 위해 지난해 4월 발의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소관 상임위에 상정만 됐을 뿐 아직 한 차례도 논의되지 않았다.

◇“보육환경 정상화할 중장기 대책 있어야”=보육 전문가들이 어린이집 폭력 사태의 근원적 배경으로 꼽은 문제는 이번 대책에서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아예 다뤄지지 않았다. 꾸준한 노력과 예산이 필요한 대책은 뒷전으로 밀린 형국이다.

당정은 보육교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인터넷 강의 등으로 1년이면 취득할 수 있는 3급 보육교사 양성과정을 ‘제한’한다고 했지만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유치원처럼 오프라인에서 교육을 받아야 보육교사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부분도 ‘원칙적’인 입장만 표명했다.

전문가들은 양성 체계를 완전히 바꾸지 않고는 질 낮은 사람의 보육교직 진입을 막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유아교육을 전공한 한 교수는 “경력만 있으면 보육교사 급수가 올라가는 현 시스템에선 아이를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한 재훈련을 시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당정이 밝힌 보조교사 확충 방안에서도 몇 명을 어떻게 선발해 투입한다는 내용은 빠져 있다. 보조교사를 얼마나 투입해야 보육교사가 체감할 정도로 부담이 줄어드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3∼5세 과정엔 보조교사가 약 6500명 있지만 0∼2세에는 없어 그 예산을 지원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복지부는 이달 말까지 대책 세부안을 마련, 상반기 중 실행으로 옮길 계획이다.

정부가 여론이 들끓을 때만 반짝 정책을 내놓고 시간이 지나면 신경 쓰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복지부는 2013년 5월 돌봄시설 학대 근절 대책을 발표하면서 “학대예방 교육을 받은 사람을 어린이집에 상주시키겠다”고 밝혔다. 이 제도는 지금 유명무실하다.

김명순 연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즉시 폐쇄나 CCTV도 중요하지만 이는 사후약방문”이라면서 “보육교사 양성 등에 관한 중장기적 계획이 있어야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