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범위 선 그어… 가이드라인 될 듯

입력 2015-01-17 02:34 수정 2015-01-17 15:32
이경훈 지부장(가운데) 등 현대자동차 노조원들이 1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통상임금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지부장은 “내부 논의를 거쳐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구성찬 기자
16일 법원의 현대자동차 통상임금 판결이 나오면서 노동개혁을 위한 노사정 논의는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측에 유리한 판결이 나오면서 논의 과정에서 노동계가 불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판결에 대해 재계는 환영의 뜻을 보였지만 현대차 노조 측은 “아쉬운 판결”이라고 밝혔다.

◇노사정위 논의 가이드라인 될 듯=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오는 3월까지 노동시장 구조 개선의 해법을 찾기로 합의하고 통상임금, 근로시간, 정년연장 등 3대 현안을 중심으로 논의 중이다. 모든 현안에서 노사 측이 이견을 보이지만, 특히 통상임금은 명확한 기준이 없어 합의까지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노동계는 모든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경영계는 한 달 넘는 기간마다 지급되는 임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의견 차가 큰 상황이다.

이번 법원 판결은 명확하지 않던 통상임금의 범위에 선을 그어줬다는 의미가 있다.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근무 일수를 계산해 지급하는 상여금만 통상임금에 해당하고 나머지는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법원에서 통상임금 범위를 일정부분 정해주면서 노사정위가 이를 가이드라인으로 삼아 논의를 진행할 수 있다”며 “노사가 이견을 좁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법원 판결이 사실상 현대차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노사정위의 통상임금 논의에서 노동계의 주장이 힘을 잃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노광표 노동사회연구소장은 “이번 판결에서 통상임금의 범위를 좁게 해석했는데 노사정위에서도 이런 판결의 방향을 수용해 사측에 유리한 합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노사정위에서 정부 측을 대표하는 고용노동부는 법원 판결이 노사정위 논의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2013년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마련한 통상임금 판단 기준에 따라 이번 판결도 나와 통상임금 기준이 기존과 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 “이제 겨우 1심이 나온 것일 뿐이어서 노사정위 판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 “사실상 승소”, 노조 “항소 여부 검토”=현대차는 법원 판결에 대해 “사실상 승소”라며 안도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통상임금 논쟁을 조기에 해소할 수 있는 기준점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현대차는 이번 판결이 지난해 구성한 ‘임금체계 및 통상임금 개선위원회’ 논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환영의 뜻을 보였지만 “극히 일부 근로자들의 상여금만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함에 따라 현장에서 새로운 갈등이 야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동계는 판결에 불만을 표했다. 이경훈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장은 “현대차그룹 계열의 각 주식회사에 동일임금 기준이 적용돼야 하는데, 법원이 옛 현대차서비스 출신 조합원에 대해서만 통상임금을 인정해 아쉽다”고 했다. 항소 여부에 대해서는 “노조 내부 논의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억지스러운 이번 판결 결과는 거대 재벌 현대차의 입김이 작용했음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도 성명을 통해 “상여금이 노동력을 제공한 데 대한 대가가 아니라고 판결한 것은 법원이 스스로 사측 대리인임을 자처한 꼴”이라고 밝혔다.

세종=윤성민 기자, 남도영 기자 woo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