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요안나 호사냑 “아우슈비츠 떠올라 북한 인권 개선에 헌신”

입력 2015-01-19 01:09
요안나 호사냑 ㈔북한인권시민연합 부국장이 지난 8일 서울 일원동 밀알학교에서 폴란드인으로서 북한인권운동에 뛰어든 계기를 설명하고 있다. 허란 인턴기자

1994년 폴란드 바르샤바대 한국어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그는 국제인권단체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참담한 현실을 접한 뒤 충격에 빠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이토록 비인도적인 만행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나치 독일군의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같은 비극이 인류역사에 더 이상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믿음. 요안나 호사냑(41) ㈔북한인권시민연합 부국장이 혈혈단신 한국으로 건너와 11년간 북한인권운동가로 사는 이유다.

지난 8일 밀알복지재단이 주최한 ‘북한 장애인 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 콘퍼런스 및 워크숍’ 현장에서 그를 만나 북한인권운동에 뛰어든 이유를 물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주폴란드 한국대사관에서 4년간 일하면서 정말 제가 하고 싶은 건 공무원이 아니라 ‘북한인권운동가’란 걸 알았어요.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여러 배경이 있지만, ‘우리도 힘들었는데 저들 역시 얼마나 힘들고 아플까’ 하는 생각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폴란드 사람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공산주의 체제를 모두 경험해 북한 상황에 금방 공감할 수 있거든요.”

대사관을 그만두고 헬싱키인권재단에서 인권과정을 수료한 뒤 북한 인권 관련 자료를 번역하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2004년. 바르샤바에서 열린 ‘북한 인권·난민 문제 국제회의’에서 만난 북한인권시민연합 관계자로부터 서울에서 인권운동가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바로 수락했어요. 전혀 고민할 게 없었죠. 북한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어떤 곳이든 가서, 어떤 일이든 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해 한국에 온 그는 북한 인권 관련 연구 및 캠페인 등에 참여했다. 유엔 인권총회가 열리는 스위스 제네바를 여러 차례 방문, 유엔이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유엔 안보리가 이를 조사할 수 있도록 각국 대표들을 만나 설득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반응은 생각보다 냉담했다.

“다들 북한보다 시리아나 수단이 더 심각하다고 느꼈습니다. 북한 상황은 TV에서 접할 수 없으니까요.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더군요.”

2012년 그는 북한 수용소 생활을 경험한 탈북민 두 명과 함께 제네바를 방문, 나비 필레이 유엔 인권최고대표와 면담했다. 이 만남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가져왔다. 필레이 최고대표는 2주 뒤 공식석상에서 “탈북자 강제송환 금지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정말, 정말 굉장히 중요한 발언이었습니다. 국제사회의 분위기가 북핵뿐 아니라 북한 인권도 문제 삼아야 한다는 분위기로 바뀌었으니까요.”

이 같은 노력은 결국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설치로 이어졌다. 하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지난해 탈북민 60명을 상대로 북한의 여성 및 장애인 인권에 대해 조사하다 충격을 받았어요. 장애아가 태어나면 의사들이 부모에게 자녀를 죽이거나 버리라고 종용한답니다. 83병원이란 곳에 보내 화학무기 생체실험을 한다는 증언도 나왔고요. 11년간 북한의 악행은 다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북한은 이들을 쓰레기보다 못한 존재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호사냑 부국장은 오는 3월쯤 서울에 설치되는 유엔 북한인권현장사무소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국제협력이 이뤄지면 북한의 인권상황 개선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통일의 그날까지 한국에 있겠다”는 그는 최근 오준 유엔 주재 한국대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 주민은 남이 아니다”라 발언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

“한국 외교관이 공식 석상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진심어린 이야기를 하는 걸 처음 들었어요. 한국 외교관들은 제네바에서 마주쳐도 북한 인권을 거론하면 남북대화에 방해가 된다며 인사조차 받지 않았거든요. 한국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말이 현실이 돼 곧 통일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