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칼럼] 낮은 곳, 더 낮은 곳으로

입력 2015-01-17 01:15

물이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르듯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른다. 물이 낮은 곳에서 머물지 않고 더 낮은 곳이 있으면 그곳으로 흐르듯 하나님의 은혜도 머물지 않고 더 낮은 곳으로 흐른다. 성도들은 은혜의 물줄기가 되어 낮은 곳,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사람들이다. ‘낮은 곳으로’라는 말은 오늘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 안에 있는 본능적이고 보편적인 세 가지 흐름을 거스른다.

하나님 나라를 거스르는 세상의 첫 번째 흐름은 높은 곳을 향하는 마음이다. ‘낮은 곳으로’라고 할 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낮은 곳으로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잘못된 출발이다. 낮은 곳이란 원래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이다. 겸손이란 높은 곳에 있어야 할 사람이 낮은 곳으로 ‘가 주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로 스스로 가는 것이다.

낮은 곳은 겸손의 자리이다. C S 루이스는 “밑만 쳐다보는 사람은 위에 계신 분이 누구신지 볼 수 없다”고 했다. 사람은 아무리 똑똑해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고 능력이 있어도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아래 낮은 곳에 있어야 한다.

겸손을 뜻하는 영어 단어 ‘Humility’와 굴욕을 의미하는 ‘Humiliation’은 라틴어 ‘Humilitas’에서 나왔다. 같은 단어에서 겸손과 굴욕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자신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스스로 나아가면 겸손(Humility)이 되고, 자신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스스로 나아가지 않아 수치스럽게 억지로 나아가면 굴욕(Humiliation)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말할 수 없는 굴욕을 당하셨지만 원하지 않는 일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자리로 나아가셨기 때문에 겸손으로 승리하신 것이다.

마태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셨다.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춘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어린아이는 자기를 높이는 권력에 낯설다. 다른 사람을 조종하고 조작해 술책 부리는 일을 잘 모른다. 누구든 자신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 높이면 굴욕을 당해 낮아짐을 경험할 것이며,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로 겸손하게 낮아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귀하게 높여주실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거스르는 세상의 두 번째 흐름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차별해 분열을 초래하는 것이다. 이 같은 분열을 거스를 수 있는 길은 서로가 낮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낮은 곳은 하나 됨의 자리이다. 빌립보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성품과 자질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권면과, 위로, 성령의 교제가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더욱 온전한 공동체를 꿈꿨다. 그것은 서로 하나 된 모습이었다. 그래서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라(빌 2:3)”고 권면했다.

물이 낮은 곳에서 만나 하나가 되는 것처럼 서로 낮은 곳으로 향할 때 모든 마음은 하나 될 수 있다. 세상은 사람을 만날 때 꼬리표를 붙여 분류하고 그 분류 상자별로 사람들을 차별한다. 우리가 낮은 곳으로 향한다면 만나는 상대가 누구이든 동일하게 대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를 거스르는 세상의 세 번째 흐름은 기득권을 가지고 섬김을 받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섬김의 자리, 더 낮은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낮은 곳이란 섬김의 자리이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길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길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그와 동등한 모든 권리를 내려놓으시고 사람이 되셔서 낮은 곳으로 오셨다. 그리고 사람들 중에 가장 낮은 종의 모습으로 더 낮은 곳에 내려오셨다. 또한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셨다(빌 2:6∼8).

그리스도의 마음은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나아가는 마음이다.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면 십자가의 희생이 있다. 그보다 더 낮은 곳은 없다. 우리가 더 낮은 곳으로 가려할 때 걸림돌은 기득권이다. 기득권을 자신의 성공의 상징으로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섬김의 기회로 사용할 것인가. 기득권을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해야 할지가 우리 모두의 과제가 돼야 한다.

이재훈(온누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