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의헌의 성서 청진기] 기득권

입력 2015-01-17 00:18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1993)에서 주인공의 어머니는 남편과 사별한 후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데 너무 안 움직이고 지낸 나머지 고도비만이 된다. 나는 주인공의 어머니를 보고 난 뒤 “변하지 않으면 비대해진다”는 소감을 가졌다. 그래도 그 어머니가 악한 결말을 보이지 않았으니 좀 나은 편이다. 그렇지 않고 자녀에게 못된 엄마라고 가정해보면 생각만 해도 고개를 절로 흔들게 된다.

기득권이라고 보통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특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외국에서 어떤 고등학교 선생님이 특권이란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교실 앞에 휴지통을 놓고 모두 각자 자기 자리에서 종이 뭉치를 던져서 들어가면 성공하는 것으로 가정하여 넣어보라고 했다. 뒷자리 아이들은 불공평하다고 반발했지만 앞자리 아이들은 반발이 없었다. 앞자리는 오로지 바로 앞에 목표가 있기 때문에 공평에 대한 생각을 못한다는 것이며, 그런 위치가 바로 특권이라는 것이다. 간결하고 인상적인 설명이다.

우리는 변하지 않아 비대해졌으면서 동시에 특권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을 충분히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들을 가리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사실 누가 기득권자인지를 생각해보는 것보다 우리가 더 많이 생각해야 할 것은 내가 얼마나 기득권자의 위치에 있는지에 대한 자성일 것이다. 나이가 먹을 만큼 먹은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어떻게 할 때 우리가 기득권자인지를 알 수 있을까? 앞서 말한 고등학교 수업의 경우로 설명하자면 우리가 뒷자리로 자리를 옮기거나 뒷자리 아이의 심정을 대신 느껴보면 되는 것이다. 역지사지나 이타주의 모두 이 상황과 연결된다. 내가 의과대학 본과에 진급하였을 때 한 교수님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설교를 인용해주셨다.

킹 목사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29∼37)를 언급하면서 사마리아인과 다른 사람들의 차이점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였고 그것은 남의 입장이 되어보는 마음 자세 여부의 차이라고 정리하였다는 것이다. 아주 간결하고 인상적인 설명이다.

이 말씀을 전해준 교수님이 고맙고, 원 출처가 되는 킹 목사가 새삼 존경스러우나, 사실 더 올라가자면 이 비유를 말해준 예수님이 가장 최고의 설교자인 셈이다. 예수님은 킹 목사를 감동시켰고, 교수님을 감동시켰고, 나를 감동시켰다. 내 글을 통해 또 어느 누군가는 타인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는 깊은 인상을 받을 수도 있을 테니 이러한 연쇄적인 반응은 실로 기적적이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가. 목표가 명료하게 앞에 보이는 위치인가 아니면 목표보다 장애물이 더 먼저 보이는 위치인가? 고등학교 수업의 예로 말하자면 목표라 할 수 있는 휴지통이 보이는지 아니면 다른 친구들의 뒤통수가 목표를 가리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물 없이 목표만 명료하게 바라보고 있는 자기 자리를 ‘노력의 결과’라고 여긴다. 그런데 냉정히 생각해보면 그것이 대개는 자기 역량의 결과가 아니라 주어진 권리라는 점이다. 정당하게 노력으로 얻은 지위가 아니라 특권임을 깨닫는 것이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사마리아인과 같은 사람이 될지, 제사장이나 레위인 같은 사람이 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초대 왕권 제도를 세워갈 때 사울도, 다윗도, 솔로몬도 모두 나름의 훌륭한 부분이 있었으나 기득권 남용 문제가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그래도 나단 선지자의 책망에 기득권을 앞세우기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뉘우친 다윗왕의 용기는 높이 살 만하다.(삼하 12:13)

멀리 생각할 것 없이 가정 안에서, 학교나 직장 안에서, 교회 안에서 여러분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가?

최의헌(연세로뎀정신과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