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요금, 가구별 최고 11배 差… 말 많은 ‘전기료 누진제’ 손본다

입력 2015-01-16 04:46
정부가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에 대한 검토에 착수했다.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이 유가 하락분을 반영해 전기요금 인하를 검토하라는 지시에 따른 것이다. 누진제 개편은 전기요금 원가보상률이 100%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직접적 요금 인하보다는 요금체계 합리화를 통해 간접적인 요금 인하효과를 꾀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누진제 개편과 함께 주택용보다 싼 산업용 요금을 올리고 주택용을 내리는 방안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970년대 배경으로 탄생한 누진제=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전기를 많이 쓸수록 높은 요금을 매기는 방식으로 절전과 저소득층 보호라는 두 가지 목적으로 1974년 도입됐다. 현행 누진제는 100kwH 단위로 요금이 올라가는 구간이 6단계로 나눠져 있고 누진율(최고·최저구간 요금 차)은 11.7배다. 최근 5년 새 정부 내에서는 누진제가 시대에 맞지 않는 비합리적 제도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우선 누진율이 11.7배로 일본(1.14배)이나 미국(1.1배)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차이가 너무 크다. 또 전기 사용량이 많은 한여름과 한겨울에는 10가구 중 4가구꼴로 요금 폭탄을 맞아 중산층의 불만이 컸다. 저소득층 보호 취지도 퇴색했다. 저소득층일수록 에너지 효율성이 떨어지는 저가 가전제품을 많이 사용해 오히려 누진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소득보다는 가족 구성원 수에 따라 전기요금이 결정되는 경향에 저소득층보다는 소득과 무관한 1인 가구가 혜택을 챙기는 문제점도 있다.

이런 지적에 정부는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누진제 구간 및 누진율 축소를 추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고소득층의 부담을 절감해주는 ‘부자감세’가 아니냐는 논란 때문이었다.

◇정부, 주택용보다 싼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엔 난색=정부는 이번 기회에 누진제 개편을 재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15일 “누진제는 ‘일물일가(一物一價) 원칙’에 어긋나고 누진율도 선진국에 비해 과도한 편이어서 개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에는 부자감세 역풍에 휘둘리지 않게 국회, 시민단체와 함께 이 문제를 공론화할 방침이다. 또 저소득층 할인제도와 에너지 바우처 확대를 통해 누진제 개편에 따른 저소득층 혜택 감소 논란을 상쇄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누진제 개편만으로 전기요금이 합리화될 수 없다는 의견도 많다. 누진제와 함께 대표적인 비합리적 요금체계로 주택용보다 싼 산업용 전기요금이 거론된다. 산업용 판매단가는 kwH당 100.7원으로 주택용(127.02원)보다 훨씬 저렴하다. 가계에 ‘바가지’를 씌워 기업에 갖다 준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부는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비싸다는 것은 옛말”이라며 “최근 3년간 33% 올랐고 원가가 주택용보다 싸다”고 설명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경제 활성화가 올해 최우선 국정과제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기업의 부담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기가 부담스러운 것이다. 이에 대해 한전은 미묘한 입장 차를 보이고 있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최근 많이 올랐지만 최소한 원가만큼은 받아야 하지 않냐는 게 한전의 속내다. 한전 관계자는 “새우깡을 누구는 500원에 팔고 누구는 1000원에 파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