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했던 실패도 부상도 그들을 막지 못했다. 아홉 손가락의 천재 등반가 토미 콜드웰(36)과 그의 파트너 케빈 조거슨(30)이 1000m에 달하는 수직 암벽을 세계 최초로 맨손으로 오르는 데 성공했다.
미국 등반가인 콜드웰과 조거슨은 14일(현지시간) 오후 3시30분 미국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엘 캐피탄’ 암벽 정상을 밟았다. 지난달 27일 도전에 나선 지 19일 만이었다. 콜드웰의 아내와 조거슨의 여자친구 등 십여명의 지인이 정상에서 그들을 맞이하며 함께 환호했다.
엘 캐피탄 암벽은 해발 2307m에 수직 높이가 약 989m에 이르며 화강암 단일 암석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암벽 등반가들의 ‘성지’다. 특히 두 사람은 엘 캐피탄 등반 루트 중에서도 최고 난(難)코스로 통하는 동남쪽 ‘돈 월(Dawn Wall·동트는 벽)’을 택했다. 고리못을 암벽에 박고 로프를 사용해 올라가는 방식으로 이 코스가 정복됐던 1970년 당시에도 무려 27일이 걸렸을 정도의 험로였지만 이번에 두 사람은 로프와 못 등 도구 없이 맨손으로 올랐다.
콜드웰과 조거슨은 추락사를 방지하기 위해 허리에 느슨하게 로프를 매달기는 했으나 암벽을 오르는 데는 이를 포함해 어떤 도구도 사용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물자수송팀의 도움을 받아 공중에 매달린 텐트에서 수면과 식사 등 생존에 필요한 모든 일을 해결했다. 둘은 주로 복숭아통조림으로 끼니를 해결했으며 때때로 위스키를 조금씩 마셨다. 소변은 허공에 그냥 봤으며 대변은 봉투에 담아서 주변에 대기하던 조력자들에게 건네주고 처리토록 했다.
콜드웰이 돈 월을 맨손으로 등반할 계획을 세운 것은 2008년이다. 조거슨이 합류하고 5년간 두 사람은 엘 캐피탄에서 훈련에 몰두했다. 2010년 첫 번째 도전은 3분의 1 지점에서 맞닥뜨린 악천후 탓에 수포로 돌아갔다. 이듬해는 연습 중 조거슨의 발목이 부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더욱 철저히 준비했다. 세 살 때 등산에 입문해 14세에 알프스산맥의 마테호른(4478m)과 몽블랑(4807m)을 오른 천재 암벽 등반가 콜드웰은 돈 월 등반을 “나의 ‘모비딕’(Moby Dick·동명의 미국 소설에 나오는 거대한 흰고래로 주인공인 에이햅 선장이 쫓는 일생의 목표)”이라고 밝혀왔다. 콜드웰은 2001년 사고로 손가락을 잃었지만 아홉 손가락만으로 세계 최고의 암벽 등반가로 꼽혀왔고 그런 집념이 이번 쾌거로 이어졌다. 특히 그는 2000년 키르기스스탄에서 암벽 등반 중 알카에다와 연계된 테러조직에 붙잡혀 3주간 인질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감시병을 제압하고 탈출에 성공했지만 자신이 감시병을 죽인 것 같다는 죄책감에 실어증에 걸렸다가 1년 뒤 감시병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겨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콜드웰은 “등반 과정에서 역경에 부딪칠수록 내 안의 열정은 불타올랐다. 이것이 진정 인생을 짜릿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라며 기쁨을 표했다. 조거슨도 “모두가 자신만의 ‘돈 월’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의 성공이 각자의 목표를 찾고 이루는 데 영감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삶의 山은 포기 않는 자가 정복한다…“역경에 부딪힐수록 열정 타올라”
입력 2015-01-16 0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