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교육되고 있다. 문제는 어떤 내용으로 누구에 의해 어떻게 교육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은 진정한 ‘되어감(becoming)’의 과정이며 자라가는 과정이다. 이제 교육의 눈으로 사회를 한 번 보자. 무엇이 문제인가. 교육 내용인가 방법인가. 아니면 교육 주체인가.
교회교육은 인간의 궁극적 성취를 지향하는 길이다. 그리고 주님을 만나는 날까지 가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교회교육에 무엇이 문제인가.
먼저 교육 대상인 우리 아이들을 살펴보자. 아이들이 자기들의 삶의 의미를 분명하게 가지고 있는가. 자기향상에 관한 분명한 자기 결단적 호기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괴로워하고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교회가 참으로 공감하고 있는가. 교회마저 세상적인 성공지상주의에 물들어 공부만 잘하면 교육이 잘됐다고 생각하고 신앙도 좋다고 단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제 교회는 국·영·수의 천재가 삶의 천재가 아니라는 상황을 절대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우리의 아이들과 공감하고 그들의 고민에 대한 가슴 아픈 공유가 필요하다.
지금 많은 교회는 긍정적 요소들도 있지만 동시에 사회·문화화에 따른 많은 병리현상들을 지니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원인에 대해 많은 기독교 사회학자들은 ‘교회가 지나치게 세상과 분리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집단적·개별화된 시공간 속에서 자기를 단절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래서 교회가 사회적 여론과 이야기에 무감각하고 전혀 신경을 쓰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가 기지고 있는 전우주적 포괄성 원리에 반하는 것으로 반드시 시정돼야 할 병리현상 중 하나다.
교회교육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력으로 개인과 교회 공동체, 그리고 사회에 생명력을 공급해야 한다. 여기에 오늘날 교회교육의 시대적 방향과 사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교회교육은 문화의 근본 틀을 형성하는 기반으로 인간적 아름다움과 정감의 수용성(receptiveness)을 부각해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요소를 안고 있어야 할 것이다. 교육은 관념상 변화가 아니라 몸의 변화, 삶의 변화까지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복합적이다. 그러므로 교회교육을 개혁한다는 것은 교회에 대한 신뢰, 교사들의 지적·정서적·영적 자질에 대해 신뢰하면서 동시에 교회학교와 교사들의 문제점들을 생각하며 개혁해 나가야 할 것이다. 현 제도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개혁 내지 변혁을 해야 한다는 점을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 변혁은 마치 자동차를 고속으로 몰면서 동시에 고장 난 부분을 수리하는 것과 같이 신중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교육개혁은 정교하고 복잡한 조작을 필요로 한다.
교회교육은 혁신돼야 한다. 이 혁신은 영원한 나라를 향한 창조적 전진(creative advance)이 되어야 한다. 해체가 아닌 새로운 형성(new formation, construction)이 되고 새로운 리더십이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가 했던 취임 일성이 의미심장하다. “무엇보다 먼저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정치적 과제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교육, 교육, 교육이다.” 영국 사회에서 부조리의 근본 원인이 교육에 있다고 본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도 이러한 시각이 필요하다. 교육혁명이 없는 교회개혁은 임기응변에 불과하다.
노재경 목사(예장합동 총회교육진흥원장)
[시온의 소리-노재경] 교회교육, 이제는 혁명이 필요하다
입력 2015-01-16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