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 혼자 사무실 밖으로 나왔지만 딱히 먹고 싶은 메뉴가 생각나지 않아 발걸음을 멈추었다. 같은 동네에서 10년 넘게 밥을 사먹다 보니 늘 그저 그렇다. 사무실 주변에 있는 식당들을 지나치면서 문득 한 남자가 생각났다.
거래처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혼자 점심식사를 하게 된 50대 중반의 A씨. 주문한 비빔밥이 나오자 숟가락을 들고 이리저리 비비던 중 자신이 비빔밥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가지런히 담겨 나왔던 밥과 나물이 양념과 뒤섞여 있는 비빔밥을 바라보자니 ‘나도 나로 살고 싶었는데 어느새 비빔밥처럼 살고 있구나!’ 하고 짧은 회한이 들었다고 할까. 크게 한 술 떼서 목구멍에 밀어넣은 그 비빔밥이 넘어가지 않아 한 그릇 그대로 두고 식당을 나왔다. A씨는 점심시간 내내 길을 걸으면서 ‘내 인생은 비빔밥이 아니야!’를 수없이 되뇌었다. 특별한 능력은 없어도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 만큼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여기며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에야 이게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한 생각이 엄습해온 것이다. 비벼진 비빔밥 그릇 안에 있는 밥과 나물처럼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존재, 그게 딱 자신의 모습 같았다. 중년이 된 지금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고, 내가 어떤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왔는지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살기 위해 살다 보니 살아온 시간 속에서 서서히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자신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전까지 말이다. 그는 복음 앞에서 다시금 마음의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남자들은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성인기에 접어들어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시기에 군대에 간다. 군대에서는 내 감정과 생각을 내려놓고 상관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조직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면서 성인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남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원하는 것에 순응하는 법을 배운다. 한 남성은 20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절반을 집 밖에서 먹고 잤다며, 그래야만 직장에 다닐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 그가 직장을 그만둔 뒤 비로소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냥 그렇게 살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남자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접전은 성경 속 인물도 예외는 아니다. 꿈 때문에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은 스무냥에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린 요셉,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 종과 포로로 살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인생에는 어떤 희망이 있었을까? 힘들고 어려운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희망을 품으면 일어설 수 있다고 말한다. 맞는 이야기 같지만 틀린 이야기다. 암담한 현실을 사는 내가 희망을 품어야 하는데, 문제는 희망을 퍼올릴 만한 마음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셉과 다니엘은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요셉은 종이 되고 죄인이 되는 상황 속에서도 인간적인 어떤 노력을 하지 않았다. 다니엘도 포로인 자신의 신분을 바꾸기 위해 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단지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는 일에 집중했다. 두 사람은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였고 믿음으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현실을 묵묵히 감당했다.
직장에 다니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 다니엘과 요셉에게서 자기 계발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자신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라고 말이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많은 꿈과 계획을 세웠는가. 그렇다면 더더욱 믿음 안에서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고히 하고,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 시간부터 가져보자. 가슴을 벅차오르게 만드는 꿈과 구체적인 계획을 이뤄갈 사람이 나 자신임을 잊지 말자. 내 존재에 대한 감사와 감동 없이 꿈과 계획을 이룰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자. 꿈과 계획은 크고 높은 만큼 고난과 고통을 품고 있다. 비빔밥에 뒤섞인 밥과 나물처럼 그저 그렇게 또 한 해를 보내고 싶지 않다면 이를 이뤄낼 인생의 힘을 충전하자.
남자를 이끄는 힘(力)은 내 인생의 주인 되신 그분(Him)을 믿는 것이다. 8500만원으로 창업해서 14년 만에 170조원 매출의 세계 최대 온라인 기업 알리바바닷컴의 마윈(馬雲·Jack Ma)은 이런 말로 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람은 물을 마시지 않고 10일을 이겨낼 수 있고, 음식을 먹지 않고 1주일을 견딜 수 있고, 숨을 쉬지 않고 2분을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꿈이 없다면 1분도 살 수 없습니다. 가난보다 무서운 것은 꿈이 없는 삶입니다. 꿈은 미래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꿈이 있다면 누가 비웃거나 비난을 해도 신경쓰지 않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을 잘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삶보다 끔찍한 것은 없어요.”
남자들의 인생 위기는 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는 것이다. 남자들이여, 내 꿈과 계획을 이룰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고 싶지 않은가?
이의수 목사(사랑의교회 사랑패밀리센터·남성사역연구소장)
[이의수 목사의 남자 리뉴얼] 비빔밥 같은 남자들 인생
입력 2015-01-17 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