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엄칠 각오까지 했지만, 듣던 대로 11월의 두만강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마모(53)씨는 지난해 11월 28일 중국 허룽(和龍)시 감평촌 앞 두만강을 걸어서 건넜다. 오래된 계획에 따라 중국 다롄(大連)을 거쳐 옌지(延吉)에 도착한 지 14일 만이었다. 경계근무를 서던 북한군 초병이 그를 체포한 순간, 마씨는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목숨을 건 입북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마씨가 바라는 대로 살게 해주지 않았다. 북한은 지난달 24일 적십자회 중앙위원장 명의의 통지문을 보내 26일 마씨를 남한으로 송환하겠다고 통보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이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보내준다’는 취지를 밝혔다”고 말했다. 판문점에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기다리던 수사 당국이 마씨의 신병을 인계했다.
미혼인 마씨는 북한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왔다. 신문사 직원으로 일하던 그는 이후 고시원 총무, 학원 강사를 전전하다 무직자가 됐고, 47세 때인 2008년 중국과 캐나다를 통해 미국에 밀입국했다. 마씨는 미국에서 노숙자로 지내며 북한에 ‘망명’을 신청했다. 2010년 7월 14일에는 워싱턴의 한 공공도서관에서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사이트 ‘우리민족끼리’ 운영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평소 백두산 명장 김일성 장군과 항일유격대원들을 높이 받들고 따르고자 한 사람입니다. 북한으로 망명을 신청하려고 합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는 실망하지 않고 같은 해 9월 13일 뉴욕에 있는 유엔 북한대표부까지 찾아가 입북을 요청했다. 하지만 북한대표부는 “입국비자를 받으려면 중국 베이징의 북한대사관을 찾아가라”며 거부했다. 불법 체류자였던 마씨는 미국에서 강제 출국됐고, 북한에 가는 대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우리 수사 당국에 구속됐다. 2011년 대구지법은 “아직까지도 김일성에 대한 존경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며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마씨가 북한에 대한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봤다. 사학을 전공한 그는 왜곡된 김일성의 항일투쟁사에 빠져 있었다. 이윽고 남한은 ‘미국에 예속된 식민지 천민자본주의 사회’, 북한은 ‘선군정치 사회’로 믿어 왔다는 게 검찰과 법원의 설명이다. 마씨는 ‘우리민족끼리’ 독자투고란에 “김일성 장군 서거 16주기를 맞아 삼가 추모한다”는 식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과대망상을 키운 요소는 사회 부적응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일정한 직업이 없던 마씨는 북한의 삶이 훨씬 좋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한 듯하다”고 말했다. 강제송환 후 체포된 마씨에게는 면회를 오는 가족도 없었다. 밀입북자를 집계한 이렇다 할 통계는 없다. 다만 생활고에 따른 밀입북자, 강제송환자 숫자는 꾸준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3년 수원지법은 밀입북했던 대리운전기사 김모(63)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하며 “최근 탈북자들의 재입북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이 마씨처럼 자신들의 체제를 찬양하는 이들을 내치는 이유는 불분명하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의 의도를 짐작할 근거는 매우 부족하다”고 말했다. 다만 선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되면 인도주의적 명분을 내세우는 ‘카드’로 활용한다는 시각이 있다. 검찰 관계자는 “무직자나 사업 실패자 등이 밀입북하면 짧게는 1개월, 길게는 2년쯤 뒤 송환된다”고 말했다. 14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검사 이현철)는 국가보안법상 잠입·탈출 등의 혐의로 마씨를 구속 기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北에 대한 환상… 50대 한 남자의 삶을 왜곡시켰다
입력 2015-01-15 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