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시중은행의 고정금리 대출 중 90% 정도가 사실상 변동금리와 다름없는 혼합형 금리 상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처음 3∼5년 동안은 고정금리로 이자를 내다가 이후 최장 30년까지 변동금리의 적용을 받게 돼 초저금리가 끝나면 상당수 가계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17년까지 가계부채 중 고정금리 대출 비율을 40%까지 높이려는 목표에 급급한 금융 당국이 혼합형 금리 상품도 고정금리로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14일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은행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고정금리가 적용되는 대출 규모는 전체의 4%(13조8000억원)에 불과하다. 정부가 같은 기간을 기준으로 고정금리 대출이 20.9%에 달한다고 발표한 것과는 차이가 크다. 일정기간 고정금리가 적용되다가 변동금리로 바뀌는 혼합형 금리 대출 가운데 상당부분이 정부 발표의 고정금리 대출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같은 기간 혼합형 금리의 비중은 24.8%(86조9000억원)나 된다.
이 대출은 3∼5년 동안 고정금리를 유지하다가 이후 변동금리로 바뀐다. 15∼35년에 달하는 대출 상환기간의 극히 일부분만 고정금리가 유지되지만, 당국은 혼합형 금리 대출 실적을 고정금리대출로 인정해 준다. 세계적인 저금리 현상으로 시중금리가 갈수록 낮아지자, 저금리의 이점을 누릴 수 없는 고정금리대출의 인기는 2013년 하반기부터 급격히 식어갔다.
고정금리대출 비중 확대 외에는 별다른 가계부채 대책이 없는 금융당국은 은행들을 다그쳤고, 은행들이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것이 혼합형 금리 대출 상품이다. 신한, 국민, 우리, 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만 따로 집계하면 지난해 44조5826억원에 달하는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실적 중 88.9%, 39조6209억원어치가 혼합형이었다. 국민·우리은행은 그 비중이 90%를 넘는다.
시장은 올해 상반기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금리가 오르면 우리나라도 기준금리가 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혼합형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이자를 더 부담해야 한다. 지난해에 3년 고정금리의 혼합형 대출을 받은 사람이라면 2017년부터는 금리 변동에 따라 이자 부담이 달라지는 것이다. 혼합형 대출은 지난해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에 2017년부터 대거 변동금리로 바뀌게 된다. 금융 당국은 금리 인상에 따른 급격한 가계 이자 부담을 우려해 고정금리 비중을 높이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혼합형 대출 급증으로 가계대출의 금리변동 위험이 오히려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금융 당국은 다음 달쯤 단기·변동금리·만기일시 상환 위주의 주택담보대출을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대출로 전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가계의 금리변동 위험을 완화하고 ‘빚을 갚아나가는 구조’를 정착시켜 대출자의 만기 일시상환 부담을 덜어주는 게 목적이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
고정금리 대출 90%가 ‘혼합형 금리’… 초저금리 끝나면 가계 타격 불보듯
입력 2015-01-15 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