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장에서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찍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수첩(사진)에는 당청 관계 등을 엿볼 수 있는 비밀의 단서들이 담겨 있다. 김 대표의 수첩에 ‘문건 파동 배후는 K(김무성), Y(유승민)’라는 내용만 실려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카메라에 포착된 김 대표 수첩 메모는 세 가지=맨 윗부분은 지난 5일 있었던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 대한 내용이다. ‘1月 5日, 최고위, ①보궐선거 공천 ②신년 (새누리당 지도부) 만찬’ 등의 표현이 선명하다. ‘(조)강특위, (문)건 파동 후 처리’라는 구절도 있다. 새누리당 조강특위가 현재 공석인 6개 당원협의회의 위원장 선출을 하고 있는데, 비선개입 문건 의혹 사건이 다 마무리된 뒤 당협위원장을 뽑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회동 거절한 김기춘 靑 비서실장=두 번째 부분은 김 대표가 어떤 인사와의 회동 관련 부분을 측근으로부터 보고받은 내용을 직접 쓴 것으로 추정된다. 수첩에는 ‘○실장, 정치적으로 묘한 시기여서 만나거나 전화통화 어렵다. 시간이 지난 후 연락하겠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김 대표 손가락에 의해 가려져 잘 안 보이는 ○실장은 ‘김’실장으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김’자의 받침 ‘ㅁ’도 살짝 보인다.
김 대표 측 관계자는 1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 7일쯤 김 대표가 김 실장에게 회동을 비밀리에 제안한 것은 사실”이라며 “김 실장이 지난 9일 청와대를 대상으로 했던 국회 운영위원회 준비와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준비로 만나는 게 힘들 것 같다는 답신을 보내왔다”고 설명했다. 즉, 김 대표가 회동을 제안했는데 김 실장이 일정상 이유를 대며 정중히 거절한 것은 맞다는 얘기다.
다른 김 대표 측 관계자는 “김 대표가 직접 김 실장에게 회동을 제안한 것은 아니며 김 대표의 측근이 김 실장 측근을 통해 연락을 취했다”면서 “수첩 내용은 김 대표가 연락 업무를 맡았던 자신의 측근 보고 내용을 그대로 기재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김 대표 수첩의 세 번째 대목이 바로 ‘문건파동 배후는 K, Y’라는 메모다. 김 대표가 이 주장의 진위를 따지기 위해 김 실장에게 회동을 제안했다는 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분석된다.
◇‘김기춘 교체설’이 발단…악화된 당청 관계 보여주는 시그널인가=김 대표가 비공개 회동을 제안한 시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지난 7일은 이재오 정병국 의원 등을 포함해 새누리당 비주류 세력의 청와대 인적 쇄신 요구가 극에 달했을 때다. 인적 쇄신의 대상은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과 김 실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 대표는 지난 5일 최고위원회의를 이끌면서 “청와대 3인방은 박 대통령이 일을 하기 위해선 필요하지만 김 실장에 대해선 교체 요구가 있다”면서도 “정치적으로 아주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당 지도부는 청와대 인적 쇄신에 대한 발언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발언이 김 대표가 김 실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는 식으로 과장돼 퍼졌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 중진 의원이 개입했다는 소문도 흘러나왔다. 김 대표로선 새누리당 지도부의 입단속을 당부하는 원론적 발언을 한 것뿐인데 김 실장 교체 요구로 비화되는 게 억울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김 대표가 ‘김기춘 교체설’의 오해를 풀고 당청 관계의 전반적인 사항들을 논의하기 위해 회동을 제안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김 실장은 이를 거절했다.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당청 관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수첩 파동으로 더욱 험난해진 당청 관계=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 대표는 언제든 만날 수 있다. 만나겠다”고 말하면서 당청 관계의 기대감이 부풀어올랐다. 하지만 김 대표 수첩 파동이라는 암초 때문에 당청 관계에서 당분간 냉각기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수첩 파동 여파로 당청 관계의 민낯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면서 “당청 관계가 수습되지 않으면 여권 내부의 계파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전웅빈 권지혜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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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1-15 1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