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들지 않는다. 비극의 요인이 밖에 있는 ‘외적 비극’이기 때문이다. 4대 비극은 햄릿의 ‘우유부단함’, 맥베스의 ‘야망’, 오셀로의 ‘질투’, 리어왕의 ‘독선’과 같이 인간의 내적 요인을 통한 비극이다. 이러한 내적 비극은 외적 비극보다 문학의 수준을 한층 고양시킨다.
그렇다면 성서에 나오는 욥의 비극은 무엇인가. 내적 비극과 외적 비극 모두를 포괄하는 ‘존재론적 비극’이다.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렘 18:6) 하나님의 손에 있는 인간 존재의 상황 때문에 생기는 비극이다. 따라서 의로운 욥이 억울하고 분함에도 불구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욥 42:6)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은 이러한 하나님의 경륜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거둬들이는 겸손한 마음’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인간의 존재론적 비극은 셰익스피어의 4개 비극의 결말과 같이 ‘쿨’하게 주인공 모두가 죽는 것이 아니라, 욥기의 결말과 같이 갑절의 축복인 희극이 된다. 왜냐하면 물이 창조주를 만나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듯이(요 2:1∼11), 인간 존재는 창조주를 만날 때 그 존재의 의미를 되찾기 때문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이 자기 생각에 맞추어 남의 생각을 고치려 하지 말고, 창조주를 만나 잠시 얼굴이 붉어지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닌가. 그때 ‘존재론적 전환’이 일어날 것이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겨자씨] 존재론적 비극과 희극
입력 2015-01-15 0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