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교포 소설가 수키 김은 2011년 7월 초 북한 평양 외곽에 위치한 평양과기대에 영어교사로 부임한다. 북한 내 최고위층 자제들이 다니는 대학으로 전 세계의 복음주의 기독교가 자금을 마련해 설립, 운영하는 곳이다. 30명 교사 전원은 외국인이고 남학생 270명이 기숙하며 공부한다. 수키 김은 이 학교에서 12월 말까지 두 학기를 보낸다.
‘평양의 영어선생님’은 수키 김이 6개월간 평양과기대에 체류하면서 일기처럼 기록한 메모들을 바탕으로 저술되었다.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Without you, there is no us(당신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라는 제목으로 먼저 출간됐는데, 그녀가 “나의 학생들” “나의 아이들”이라고 부르던 평양과기대 학생들이 자주 불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 찬양가의 가사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세련된 도시 뉴욕 맨해튼에 거주하는,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고 할 젊은 여성 소설가는 세상에서 가장 낙후된 도시이자 세상에서 가장 통제된 국가에서 자라나는 19세, 20세의 북한 남학생들을 만나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이 책은 북한 특권층 젊은이들의 현실과 세계 인식, 그리고 그를 통해 가늠해볼 수 있는 북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극과 극의 두 세계가 만나고 충돌하고 대화한 내용을 들려준다.
“나는 그들이 ‘우리’ 대신 ‘나’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확보하기를 바랐지만 여기서는 ‘나’는 없었다.”
수키 김은 서울 출생으로 중학생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갔으며 2003년 첫 장편소설 ‘The Interpreter(통역사)’를 발표하며 미국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2002년 이후 몇 차례 프리랜스 언론인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북한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북한에 들어가 일정기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고는 북한에 관한 의미 있는 글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느낌이 강해졌다.”
수키 김의 체류는 사실 ‘잠입’이었다. 그녀는 북한의 유일한 사립대학인 평양과기대에서 가르칠 수 있는 기회에 관해서 듣고 원서를 낸다. 평양과기대에서 그녀는 어릴 적 떠나온 고향의 품에 안긴 듯한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고, 학생들과 우정을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가 공들여 관찰하고 기록한 것은 북한 학생들의 지식과 경험, 심리, 논리, 세계관 등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은 북한의 최고위층 자제들이었지만 다른 도시에 가본 적이 없었으며, 부모와의 면회도 금지된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여자 친구와 연애를 해본 경험이 없었고, 정든 교사와 이별할 때조차 슬픔을 드러낼 수 없도록 지도되었다. 에세이라는 형식의 글을 처음 써보며 당혹스러워하는 학생들은 포크와 나이프 사용법도 몰랐다. 수키 김은 학생들이 거짓말에 능숙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들은 모르는 걸 안다고, 안 한 걸 했다고 했으며, 못 가본 곳을 가봤다고 했다. 너무 뻔한 거짓말을 자주했고 비과학적인 주장을 사실이라고 강변했다.
“바로 이런 순간에 나는 그들이,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무서워서 거짓말을 하고 수령의 위대성을 자랑하도록 강요받았거나 아니면 나에게 말하는 모든 것을 진심으로 믿었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중 어떤 것이 더 슬픈 현실인지 나는 정할 수 없었다.”
그녀와 동료 교사들은 북한 학생들을 보면서 “노예들” “군인들”이라는 단어를 자주 연상했다. 또 거짓말과 연극이 본성처럼 내재해 있다고 느꼈다.
주말에는 교사들과 함께 여행도 했다. 개성을 다녀오던 날의 기록을 보자.
“나는 그토록 소음이 없는 광경을 경험한 적이 없다. 소음이란 문자 그대로 소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소음, 닫힌 문 뒤에서 살아가는 삶의 증거를 말한다. 달려가는 개나 어린이들을 보지 못했고 굴뚝의 연기를 보지 못했으며 TV 수상기에서 나오는 번쩍거리는 빛을 보지 못했는데, 이것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가장 불편하게 한 것은 내가 본 것의 진실을 끝내 확인할 수 없었고 앞으로도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수키 김은 교사로서, 동포로서, 또 어른으로서 안타까워한다. 진실을 알려주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나는 그들 하나하나와 악수를 할 때 ‘이 끔찍한 곳을 떠나라. 너희의 끔찍한 수령을 떠나라. 그것을 떠나거나 모두 개혁해라. 제발 무엇인가 하거라’라고 말할 수 없었다. 대신 나는 울고 또 울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결국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고, 혼자 울 수밖에 없었다. 진실을 가르쳐준다는 것은 그들에게 생명을 던지라는 얘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바깥세상을 모르는, 이상하리만큼 아이 같았던 그들에게 말을 가르쳤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내가 불어넣어 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정권의 군인들로 자라 주기만을 바란다. 나는 그들이 나의 가르침을 유지하고 나를 기억하고 체제를 의문시하기 시작했다가 무슨 일이 닥칠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수키 김의 문장은 따뜻하고 유려하다. 그녀는 판단이나 주장을 앞세우지 않는다. 그렇다고 감추거나 모호함 뒤로 숨지도 않는다. 용감하고 정직하게, 그녀가 본 북한을 증언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평양, 그곳에 ‘나’는 없었다
입력 2015-01-16 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