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김영석] ‘미스터 X’를 활용하자

입력 2015-01-15 02:50

2002년 북·일 정상회담에는 ‘미스터 X’가 존재했다. 1년여간 30여 차례의 막후 접촉을 통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본 총리를 북한으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한 인물이다. 2009년 미국 여기자 납치 사건 당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이끈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미스터 X’는 2011년 99발의 총알세례를 받고 처형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측근 류경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런데 지난해 6월 일본 언론을 통해 2대 ‘미스터 X’가 튀어나왔다. 일본인 납북자 재조사 합의 과정에서다. 북한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최측근 인물이라는 게 일본 언론의 분석이다.

대형 외교 이벤트에는 언제나 존재

이처럼 정상회담과 같은 대형 외교 이벤트 막후엔 ‘미스터 X’가 언제나 존재했다. 21∼22일로 예정된 미국과 쿠바 국교정상화 회담에도 막후 접촉에 나섰던 ‘미스터 X’가 있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3년 봄 ‘Think big(크게 생각해 달라)’을 주문했다. 벤 로즈 국가안전보장회의 부보좌관은 2013년 6월 캐나다로 날아가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미스터 X’를 9차례 만났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막후에서 조정 작업을 벌인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결과는 53년 만의 국교정상화라는 역사를 만들었다.

1971년 파키스탄을 방문 중이던 헨리 키신저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복통을 핑계로 휴식을 취해야 한다며 파키스탄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베이징에 들어가 17시간 동안이나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와 마주앉았던 일화는 유명하다. 키신저가 1969년부터 3년 동안 준비했던 구상이었다. 1998년 6월 통일소 500마리를 끌고 북한을 찾았던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도 또 다른 의미의 고위급 ‘미스터 X’였다. 정 전 회장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김대중 대통령은 문제를 대화로 풀어가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2월 “지도자로서 판단력과 식견을 갖췄다”고 김 위원장을 평가했다. 그로부터 넉 달 뒤 1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졌다. 고위급 ‘미스터 X’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러나 무작정 막후 접촉에 나서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미국 비밀 외교전문가들이 ‘미스터 X’의 막후 협상 5대 원칙을 제시한 적이 있다. 우선 올바른 중재자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막후 채널이 가동되면 많은 사람들이 끼어들 가능성이 있는 만큼 메신저 선택이 중요하다고 했다. 또 ‘여러 신호를 탐색하되 올바른 신호를 찾아내라’고 충고한다. 다음으로는 지나친 비밀주의를 배격하고 공사(公私)의 언급이 일치하라고 말한다. 보안 유지에만 매달리거나 공·사석에서의 언급이 다를 경우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조언한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방법이 실패하면 곧바로 다른 방법을 찾으라고 했다.

남북정상회담 위한 막후 접촉 필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신년사를 통해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깜짝 카드 대신 단계적 대화를 강조했다. 그런 까닭에 우리에게도 이제 ‘미스터 X’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이미 ‘미스터 X’가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권 일각에선 친박근혜계 중진이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도 흘러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주변 상황도 점점 악화되는 분위기다. 벌써부터 레임덕이라는 단어가 들려온다. 움직여야 할 시점이다. 막후 접촉에 대한 거부감도 예전만큼 심하지 않다. 여야 모두 사전 접촉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과거 1, 2차 남북정상회담이 현금 퍼주기 논란에 휩싸였다면 이번엔 물론 조금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이제는 ‘미스터 X’를 통한 통일 대통로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김영석 정치부장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