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이영주] 안전한 사회는 그냥 오지 않는다

입력 2015-01-15 02:30

화재는 다른 재해와 달리 예측 가능한 사고임과 동시에 예방과 대처를 통해 그 발생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재난이다. 그럼에도 이번 의정부 공동주택 화재는 예방적인 측면과 대처 모두 문제점이 드러나 다시 한번 우리 사회의 안전수준을 우려케 하고 있다.

최초 화재는 공동주택 내 1층 주차장 오토바이에서 시작됐고, 가연성 재료로 구성된 필로티 벽면과 천장을 타고 빠르게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방화구획 성능이 없는 현관문은 화재를 차단하는 역할을 하지 못했고, 건물 내부의 피난계단과 수직으로 관통하는 통신구를 통해 화염 및 연기가 다른 층으로까지 번졌다. 유일한 피난경로인 계단이 연기와 화염으로 가득 차 사용할 수 없게 된 거주자들은 미처 대피하지 못한 채 건물에 갇힌 상태가 되었고, 이로 인해 인명피해가 커졌다.

다른 한편에서는 가연성 높은 외장재로 덮인 건물 외벽까지 불이 옮겨 붙으면서 충분한 이격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인접 건물로 확산됐고, 불법주차 차량으로 화재현장 접근에 상당한 시간을 허비했다. 소방대는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과 후방 철로 등으로 인해 화재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 사고를 바라보는 여론은 화재가 발생한 건물이 ‘도시형 생활주택’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위험이 있었고, 어떻게 이렇게 위험한 건물이 버젓이 지어지고, 그곳에 사람들이 살 수 있게 했는지에 대한 질책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것이 도시형 생활주택만 맞아야 하는 매는 아니다. 30층 이하의 건축물은 현재까지도 가연성 외장재의 사용에 제한이 없으며, 필로티 형태의 건축물은 도시형 생활주택 이전에도 지어지고 있으며 지금도 그렇다. 주변 건물과의 인접은 상업지구 내 다른 건축물들도 같은 기준을 따르고 있으며, 스프링클러 미설치나 피난계단이 하나뿐인 것은 도시형 생활주택이기 때문이 아니다. 소규모 건축물도 소방시설, 피난시설의 적용의무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번 화재가 우리나라 건물의 화재안전에 대한 전반적인 재고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의정부 화재로 건축물의 안전에 대한 여러 가지 보완책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건물 외벽을 통한 화재확산 방지방안, 필로티 구조에서의 출입구 방호, 피난로 확보, 수직관통부의 방화구획 등 기술적·제도적 보완이 이뤄질 것이다. 이러한 정책과 규제들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 필요성과 실효성, 적용성 등을 면밀하게 검토해 과도하지 않으면서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적정한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소방차량의 진입을 막은 불법주차 등 안전인식도 다시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혹자는 주차장 확보기준을 완화해 주차장이 부족해지면서 그 풍선효과로 불법주차를 야기했다고 변명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본인의 편리를 위해 안전을 위협했다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재난사고 때마다 사회와 정부를 질책하면서도 정작 스스로 안전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계단 문을 열어 두지는 않는지, 사용하지 않는 가스밸브는 잠그는지, 복도에 적치물이나 가연물을 쌓아 두지는 않는지, 비상경보가 울렸을 때 오작동이겠거니 하고 무시하지는 않는지 등 사소한 행동부터 안전을 위한 비용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지, 본인의 이익을 안전을 위해 포기할 수 있는지, 공공의 안전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지 차근차근 되짚어 봐야 한다.

이번 화재를 계기로 안전 시스템과 안전의식이 한 단계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두 가지가 균형 있게 높은 수준을 지향할 때 안전한 사회가 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영주(서울시립대 교수·소방방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