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의 후계 구도를 놓고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장남인 신동주 일본 롯데그룹 전 부회장이 경영권을 박탈당한 가운데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10일 일본을 방문하는 등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일단 신 회장이 롯데그룹 경영권 확보에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신 전 부회장이 반격에 나설 경우 본격적인 경영권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은 여전하다.
◇일본발 후계구도 이상기류=롯데가의 최근 상황은 신 전 부회장이 잇달아 경영권을 상실하며 급작스레 부각됐다. 그는 지난달 26일 임시이사회에서 일본 롯데그룹의 주요 계열사 3곳의 이사직에서 해임된 데 이어 지난 8일 일본그룹의 지주회사인 롯데홀딩스 부회장에서도 해임됐다.
신 전 부회장의 해임 사유에 대해서는 한·일 롯데 측 어느 누구도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장남이 부회장을 맡았던 롯데홀딩스의 2013년 연결 기준 매출액이 5조7572억엔으로 전년(4조2872억엔)보다 34.3%나 성장률이 높았던 점을 감안하면 경영 실적 부진으로 인한 퇴진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선 롯데가의 승계 구도가 신격호 총괄회장의 차남인 신 회장 쪽으로 기울었다는 분석과 조만간 롯데 2세 간 경영권을 둘러싼 다툼이 본격적으로 점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신 전 부회장 해임 이후 두 형제의 행보도 예사롭지 않다. 신 전 부회장은 해임 직후 하루 만에 한국으로 건너와 11일 가족모임에서 신 총괄회장을 만난 뒤 12일 저녁 늦게 일본으로 돌아갔다. 신 회장은 형이 방한한 다음날 곧바로 일본으로 출국해 13일 저녁 귀국했다. 미묘한 시점의 일본행을 두고 신 회장이 일본 롯데그룹의 경영권을 장악하기 위해 신 전 부회장 공백기를 틈타 발 빠르게 움직인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됐다.
이런 와중에 신 회장이 이날 김포공항에 도착한 뒤 기자들을 만나 “형님(신 전 부회장) 해임 건은 아버님(신 총괄회장)의 뜻”이라고 밝혀 파장을 예고했다. 그러면서 “형님과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에서 만났다”고 말했다. 신 회장이 한국과 일본의 롯데그룹을 총괄하느냐는 질문엔 “모르겠다”고 답했다.
◇미묘한 지분구조 탓 경영권 분쟁 가능성 상존=롯데그룹은 두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이 상존해 왔다. 특히 신 회장이 일본 롯데를 맡고 있는 신 부회장에 비해 확실한 우위를 점할 만큼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점도 불안 요소다.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롯데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서 있는 롯데쇼핑의 최대주주는 신 회장으로 13.46%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신 전 부회장 지분도 13.45%로 두 형제의 차이는 고작 0.01%에 불과하다.
일본 롯데 지분도 두 형제의 점유율이 비슷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 총괄회장이 상호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도록 조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영권 분쟁이 벌어질 경우 우호지분에 따라 얼마든지 대주주가 바뀔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오히려 형제 간 다툼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 지난해 신 회장이 롯데푸드와 롯데케미컬 등의 지분을 사들이자 신 전 부회장이 곧바로 롯데제과 주식을 집중 매입하는 등 지분 매입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신 전 부회장은 롯데 지배구조에서 중요 지위에 있는 호텔롯데, 롯데알미늄, 롯데리아, 롯데건설 등 국내 계열사에서 아직 임원직을 보유하고 있다.
◇경영권 분쟁은 재벌의 숙명?=그간 국내 여러 재벌의 경영권 승계 과정은 혈족 간 분쟁으로 얼룩져 왔다. 재벌닷컴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 자산 기준 40대 재벌그룹에서 지금까지 총수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일어난 곳은 모두 17곳이었다.
신 총괄회장도 1965년 국내 라면사업을 도입하려던 동생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과 갈등을 겪었다. 이 후유증으로 신춘호 회장은 당초 롯데공업이었던 사명을 농심으로 변경하며 롯데에서 분리해 나왔다. 신 총괄회장의 두 아들이 한국과 일본의 롯데그룹 경영권을 놓고 충돌한다면 2대 연속으로 형제 간 갈등을 겪게 되는 셈이다.
국내 최고 재벌그룹인 범삼성가에서도 2012년 상속재산을 놓고 동생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형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간 소송전이 벌어졌다. ‘왕자의 난’으로 유명한 범현대가 2세들 간 경영권 분쟁은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 등 여러 그룹으로 분리되면서 끝났다. 두산그룹 역시 고 박두병 전 회장의 2세들이 회장직을 둘러싼 경영권 다툼으로 아픔을 겪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
롯데家 형제 경영권 다툼 조짐
입력 2015-01-14 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