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인사이드-단독] 수백억 탈루하고 ‘실수’라는 스타… 형사처벌 면해

입력 2015-01-14 04:49 수정 2015-01-14 10:10

한류스타 장근석(28)씨가 탈세로 100억원이 넘는 추징금을 물게 된 배경에는 한류 에이전시(중화권 연예기획사) H사가 있다. 이 회사는 장씨의 중화권 연예활동을 책임지고 있었다. 장씨는 H사와 계약을 맺고 2010년 아시아 투어 팬미팅 및 콘서트를 가졌고 아시아권을 겨냥한 음반도 냈다. 중국 TV프로그램과 의류·음료회사 광고에 출연했다.

H사는 장씨 외에도 국내 연예인 20여명과 계약했다. 가수 비(본명 정지훈), 배우 송혜교 한채영씨 등 톱스타 여러 명이 포함돼 있다. 설립 3년 만인 2011년 매출 100억원을 넘어섰다. 10여개 동종업체 중 매출액 1위였다고 한다. 연예계 관계자는 당시 “(H사) 대표가 한국인인데도 중국 연예계 마당발이라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H사와 계약한 한류스타 면면이 아주 화려하다”고 말했다. 1997년 아역배우로 데뷔한 장씨는 일본과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팔로어가 1800만명이 넘는다.

◇‘환치기’ 첩보에 6개월 계좌추적=지난해 2월 말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검사 노정환)는 H사 관련 첩보를 입수했다. H사 장모(36) 대표가 중국에서 받은 연예인 출연료 등 300억원을 환치기 수법으로 국내에 반입했다는 거였다.



당초 수사·과세당국은 장 대표가 환치기로 세탁해 들여온 돈이 연예인들에게 분배되는 과정에서 탈세가 이뤄졌을 거라고 봤다. 국내 연예기획사의 정식 계좌가 아니라 연예인 개인 계좌나 차명계좌에 수익금을 몰래 입금한 뒤 소득 신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사정당국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3월쯤 “국민의 사랑을 받아 해외로 진출해서 번 돈을 환치기 수법과 차명계좌로 빼돌리는 건 한류 열풍의 어두운 면”이라며 “이를 적발해 탈세액을 추징하고 가능하다면 사법처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해 5월쯤 H사를 압수수색해 계약서, 회계자료 등을 확보했다. 이걸 토대로 연예인들 계좌에 수익금이 얼마나 어떻게 지급됐는지, 소득신고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추적해야 할 개인·법인 계좌가 너무 많았다. 이에 국세청에 조사를 의뢰했다. H사와 계약한 연예인들의 탈세 여부도 함께 조사토록 요청했다.

지난해 6월 국세청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시 연예계는 전전긍긍하며 국세청의 계좌추적과 세무조사가 조용히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국세청은 2개월가량 계약서와 계좌 입금액, 소득신고액 등을 비교한 뒤 지난해 8월쯤 H사와 계약한 연예인 중 일부의 탈세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장씨가 20억원가량의 소득을 신고하지 않은 사실을 적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부터 H사 세무조사가 장씨 세무조사로 확대됐다. 국세청은 조사 ‘데드라인’을 9월 말로 미뤘다. 예상외로 탈루액은 컸다. 국세청이 파고들자 수백억원대로 늘었다. 이에 따른 순수 탈세액만 100억원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장씨는 지난해 11월 가산세 등을 합쳐 100억원이 넘는 추징금을 납부했다. 장 대표도 수십억원대 소득을 신고하지 않아 10억원대 추징금을 납부했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과정에서 고의로 소득을 누락한 물증을 발견하지 못해 장씨를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 장씨는 국세청에 “소득 일부를 누락한 것은 실수”라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끊이지 않는 연예인 탈세 사건=연예인 탈세 문제는 잊힐 만하면 한 번씩 터져 나온다. 지난해 8월 송혜교씨는 25억원이 넘는 돈을 추징당했다. 증빙자료 없이 2009년부터 3년간 54억원가량을 경비 처리했다는 이유였다. 2011년엔 ‘국민 MC’로 주가를 올리던 방송인 강호동씨가 같은 이유로 수억원 추징금을 물었다. 비슷한 시기 배우 김아중씨와 가수 인순이씨 역시 소득을 수억원 줄여 신고해 논란이 일었다.

연예인들은 본인의 소득신고와 필요경비 인정 여부에 따라 세금을 낸다. 개인의 양심에 맡기다 보니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소득을 줄여 신고하고 필요경비를 부풀리는 사례가 계속 적발된다. 필요경비는 수입을 올리는 데 들어간 비용이다. 필요경비가 차감된 후의 소득액을 기준으로 세금이 매겨진다. 필요경비 인정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국세청은 일반 세무조사를 하다 ‘사기나 그 밖의 부정한 행위’가 발견될 경우 조세범칙조사에 들어간다. 세금 추징뿐 아니라 형사 고발까지 염두에 두는 것이다. 그러나 연예인에 대한 세무조사가 범칙조사로 이어진 경우는 거의 없다. 국세청 관계자는 “탈세액 규모가 아닌 부정행위 여부로 범칙조사 시행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박은애 문동성 기자 limitle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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