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발생한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는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어이없는 참사였다. 불이 인근 아파트로 번져 3개 동이 화마에 휩싸였으며 인명피해는 사망 4명, 부상 128명이 발생했다. 대규모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재난현장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헌신적으로 구조에 나선 의인(義人) 덕분이었다.
육군 1군단 공병대대 소속 최준혁(25) 소위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오는 5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최 소위는 사고 당시 대봉그린아파트 옆 건물인 드림타운 2층 애인의 집에 들렀다가 화재를 목격하고 구조에 힘을 보탰다. 최 소위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 밖으로 나왔다가 바로 옆 건물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불길이 치솟는 걸 발견했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방전돼 신고할 수 없자 그는 건물 뒤에 있던 관리인에게 119에 신고하라고 소리친 후 1층과 2층 사이에 있는 소화기를 가져와 불을 끄기 시작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다 소방관이 도착하자 그들을 뒤따라 검은 연기가 자욱한 건물로 무작정 뛰어들었다. 비상벨을 누르고 2층과 3층에 있던 집의 현관문을 두드리면서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연기가 거세져 더는 버티지 못하고 건물 밖으로 나온 그는 3층과 4층에서 창문을 열고 뛰어 내린 주민들을 부축해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최 소위는 “학군단 교육과 부대 내 화재 대응 훈련에서 배운 대로 조치했다”며 “군인이라면 누구나 구조에 나섰을 것”이라고 말했다.
염섭(62) 드림타운아파트 관리소장도 대형 인명 피해를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침 근무를 하던 중 대봉그린아파트 주차장에서 시작된 불을 처음 발견한 염 소장은 곧바로 119에 신고한 후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아파트 맨 위 10층까지 3차례나 오르내리며 주민들에게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주차장에서 자신의 자동차가 불타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주민들을 빨리 대피시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염 소장은 “어떤 방에서는 젊은이들이 깊은 잠에 빠져 문을 두드리고 발로 차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며 “3번째로 10층까지 올라갔을 때는 숨이 턱턱 막혔지만 계속 문을 두드렸다”고 말했다.
대기업에서 25년간 근무하고 퇴직해 지난해 5월부터 이 아파트에서 근무해 온 염 소장은 “세월호 선장과 같이 비겁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민 이승선(51)씨도 화마 속에서 주민 10명을 구했다. 크레인을 타고 빌딩 외벽에 간판을 설치하는 일을 하는 이씨는 승합차를 몰고 일하러 가다 대봉그린아파트 쪽에서 검은 버섯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발견했다. 그는 작업할 때 ‘생명줄’로 사용하는 30m 길이 밧줄꾸러미와 생수 2병을 챙겨들고 화재 현장으로 달려갔다. 창문에 매달려 비명을 지르는 주민들을 발견한 그는 가스배관을 타고 올라가 밧줄을 이용해 3층에 있던 3명을 지상으로 대피시켰다. 주민들이 내려가는 동안 밧줄을 꽉 잡고 있느라 힘이 다 빠졌지만 위층에서 구조해 달라고 외치는 주민들을 보고 다시 구조에 나섰다. 옆 건물 옥상을 통해 대봉그린아파트로 건너 간 그는 옥상 난간에 밧줄 한쪽 끝을 묶은 뒤 밧줄을 아래로 늘어뜨려 6층에서 4명, 7층에서 2명, 8층에서 1명을 구했다. 이씨는 “그분들이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구해 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의정부=정수익 기자 sagu@kmib.co.kr
의정부 화재 그날, 3인의 숨은 의인 있었다
입력 2015-01-14 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