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부자의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이 불발됐다. 업계에서는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해소하면서도 경영권 승계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분 매각이 다시 추진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은 13일 보유 중인 현대글로비스 주식 1627만1460주(43.39%) 가운데 502만2170주(13.39%)를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하려 했으나 무산됐다. 이번 지분 매각은 시티글로벌마켓증권이 단독 주관사로 나섰다. 하지만 물량 부담이 커서 받아줄 수 있는 기관 매수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단가 26만4000∼27만7500원 선에서 처분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규모만 1조3200억∼1조4000억원에 달한다.
현대차그룹 측은 이번 지분 매각이 내부거래 규제를 강화한 공정거래법 개정에 부응하기 위한 취지였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 부회장도 12일(현지시간) ‘2015 북미국제오토쇼’가 열린 미국 디트로이트시 코보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경영권) 승계보다는 지배구조 그런 쪽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아직 (매각이) 된 것도 없고 진행 중이며, 한국으로 돌아가봐야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블록딜이 성사됐다면 정 회장의 현대글로비스 보유주식은 251만7000주(6.71%), 정 부회장은 873만2290주(23.28%)로 줄어들 예정이었다. 두 사람의 지분을 합친다고 해도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처벌 기준인 30%에서 0.01% 모자란 29.99%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여전히 경영권 승계 차원에서 현대모비스 지분을 인수할 ‘실탄’을 마련하는 데 주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이번 블록딜 거래가 무산되자 곧바로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설이 재부상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지주회사와 현대글로비스를 합병하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합병을 추진하려면 현대글로비스의 주식가치를 높여 시가총액을 두 배 이상 높여야 하는 선결과제가 남아 있다. 현대글로비스의 시총은 11조2500억원으로 현대모비스 23조1618억원의 48.6% 수준에 불과하다. 정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31.9%를 보유하고 있지만 현대모비스 지분은 갖고 있지 않다. 두 회사의 시총을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야 합병 뒤 정 부회장의 지분율이 올라가고, 원활한 경영권 승계가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합병을 위해서는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도 해소해야 한다. 기아차가 갖고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 16.9%을 해소하지 않으면 합병 자체가 난관에 부딪히고, 순환출자 금지 규정으로 인해 추가 투자도 어려워진다.
따라서 블록딜을 재추진할 가능성이 우세하게 거론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블록딜의 재추진 여부에 관해서는 현재로서는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절차가 복잡한 합병보다는 상황을 지켜본 뒤 일단 블록딜부터 다시 추진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현대차 측의 주장대로 공정거래법에 따른 처벌을 피해야 하는 상황도 블록딜을 다시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지분 매각은 무산됐지만 향후 지배구조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현대글로비스 주가가 급락했다. 현대차그룹 측은 “지분구조에 변화가 생겨도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의 최대주주 지위는 유지될 것”이라고 수습에 나섰다.
유성열, 디트로이트=남도영 기자 nukuva@kmib.co.kr
정몽구 父子, 현대글로비스 지분매각 불발… 모비스와 합병? 블록딜(대량매매) 재추진?
입력 2015-01-14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