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업무보고-공정거래위원회] 사라진 경제민주화

입력 2015-01-14 02:46 수정 2015-01-14 11:04

공정거래위원회는 13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익명 제보 시스템 구축 등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관행 개선 방안을 밝혔다. 그러나 다음 달부터 본격 시행되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대한 적극적인 처벌 의지가 결여돼 있는 등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는 크게 퇴색했다는 지적이다.

◇불공정행위 신고인 익명 100% 보장=지금까지 불공정행위로 해를 입은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보복 때문에 신고를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한 예로 유통업의 경우 영업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을(乙)’ 입장에서 영원한 ‘갑’으로 보이는 대형마트나 TV홈쇼핑사를 신고하는 것은 사실상 장사를 접겠다는 뜻으로 보일 만큼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공정위는 중소기업들이 신고 후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고 불공정행위를 신고할 수 있도록 올 1분기 중 ‘익명제보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신고·제보한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보복 여부를 6개월마다 점검할 계획이다. 또 하도급대금 미지급 문제를 개선하고자 협력업체에서 조사를 시작해 대기업까지 확대하는 ‘역추적’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올해 집중 감시 대상으로 TV홈쇼핑사와 지방공기업을 들었다. 부처 합동의 ‘TV홈쇼핑 거래관행 정상화 합동TF’도 만들어진다. 공정위는 하반기에는 지방공기업에 대한 직권조사도 실시할 방침이다.

◇사라진 경제민주화=이날 공정거래위원회의 대통령 업무보고 자료에는 경제민주화란 단어는 단 한 곳도 들어가 있지 않다. 지난해 업무보고에서 ‘경제민주화 체감 원년’이라고 선언한 지 1년 만에 슬그머니 사라진 셈이다. 또 경제민주화의 대표적 성과물인 대기업 총수일가의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와 관련해 위법행위가 발견돼도 건건이 적발, 조사하지 않고 1년에 두 차례씩 모아서 처리할 방침이다. 공정위는 이날 대통령 업무보고가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관행 개선’이라는 주제로 국한된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사후 브리핑에서 “별도로 경제민주화란 모자를 씌우지 않았지만 오늘 발표한 방안들이 모두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것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공정위의 대통령 업무보고를 보면 경제민주화의 ‘흥망성쇠’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권 초인 2013년 업무보고에서 공정위는 대기업집단의 폐해시정을 첫 번째 중점 정책과제로 삼고 대기업 조사국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경제민주화 과제는 우선순위가 밀리더니 올해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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