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매각을 추진한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실탄’ 마련용 매각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은 12일 보유 중인 현대글로비스 주식 1627만1460주 가운데 502만2170주를 매각키로 하고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투자자 모집에 착수했다. 씨티그룹을 통해 기관투자가들에게 대량매매(블록딜) 형식으로 지분을 매각할 예정이라는 공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매각이 성사되면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율은 29.99%로 낮아진다.
이번 지분 매각은 표면적으로 일감 몰아주기 등 내부거래 규제를 강화한 공정거래법 개정 취지에 맞추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초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하는 상장 회사 중 특수관계인(지배주주 및 그 친족) 보유 지분이 30% 이상인 계열회사와의 거래 등을 통해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할 경우 이익제공기업과 수혜기업은 물론 특수관계인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그간 공정거래법 규제에 상당히 민감히 대응해 왔다”며 “이번 조치도 공정위의 내부거래 규제 강화 취지에 부흥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거래의 방점이 승계 구도에 찍혀 있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현대글로비스 지분매각 대금이 현대모비스를 사들이는 데 쓰일 것이라는 관측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의 순환출자 구조로 돼 있다. 그러나 정 부회장이 현재 순환출자 고리의 주요 3개 계열사 중 지분을 보유한 곳은 기아차(1.75%)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정 부회장이 그룹을 승계하려면 순환 고리의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경영권에 위협받지 않을 만큼 확보하는 것이 최대 과제다.
현대차 측은 정 회장 부자가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으로 손에 쥘 것으로 예상되는 돈의 용처가 아직 결정이 안 됐다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시장은 글로비스 지분 매각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결국 현대모비스 지분 취득에 사용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현대글로비스의 주가가 작년 초 21만8000원에서 최근 30만5000원까지 오른 반면 현대모비스는 같은 기간 28만7000원에서 23만8000원 수준으로 떨어진 만큼 차익 실현을 위한 호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 부회장이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의 지분 16.88%를 사들일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시장에서 꾸준히 제기된다. 또 현대글로비스 주식 가치를 높여 정 부회장에게 넉넉한 자금을 마련해 준 뒤 현대모비스와 지분 맞교환을 추진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되고 있다. 현재 현대모비스 지분은 기아차를 비롯해 정 회장이 6.96%, 현대제철이 5.66%, 글로비스가 0.67% 각각 보유하고 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정몽구 父子, 글로비스 지분 매각 추진
입력 2015-01-13 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