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가족이 멸시받을 것 같아 함께 죽으려 했다… 아내와 딸의 시신이 영안실에 있는데 음식이 어떻게 입에 들어가겠나.”
지난 6일 주식투자 실패를 비관한 40대 가장이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하고 자살을 기도한 ‘서초 세 모녀 살해 사건’. 피의자 강모(48)씨는 경찰 조사에서 “가족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대출 빚을 갚고도 10억원 가까이 남을 만큼 ‘넉넉한’ 이의 이런 설명에 대중은 선뜻 공감하지 못했다. 강남 부자끼리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이토록 무서운 거라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이 일가족의 비극을 가져온 근본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미래가 걱정된다는 이유로 아내와 자녀의 생명을 자신이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 ‘가장(家長)의 그릇된 오지랖’이다. 여성·청소년 관련 범죄를 오래 다뤄온 검찰 고위 관계자는 12일 “자기 생명을 스스로 거두는 일에는 법이 관여하지 않지만 부모가 자녀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에는 사회적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타적 살해’라는 착각=‘내 가족의 고통을 줄여주겠다’는 강씨의 월권적 범죄 심리는 살해 도구인 수면제와 머플러에 그대로 묻어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강씨의 범행을 두고 “범죄심리학 개념으로는 이타적 살해(Altruistic Homocide), 방법적 측면에서는 소프트 킬링(Soft Killing)에 해당한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흉기를 써 얼굴에 상처를 남기거나 피를 흘리게 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은 점에 주목한다”며 “이는 범죄자가 품은 미안함을 설명하지만, 동시에 범행 부담을 덜어주는 측면으로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활고를 이유로 일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에 관한 공신력 있는 통계는 없다. 다만 전문가들은 경제난이 불거질 때마다 이런 사건이 많으며, ‘맷집’이 약해진 요즘의 30, 40대가 나약한 선택을 많이 한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일가족의 극단적 선택을 다룬 언론 보도가 유독 많았고, 최근 들어서도 잦아진다고 체감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28일에는 인천 서구 한 빌라에서 실직한 40대 가장이 3세 딸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에는 “딸은 내가 책임지고 같이 간다”고 적혀 있었다. 다음날에는 광주 북구의 한 도로에서 30대 여성과 9세 딸이 번개탄을 피운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병이 있고 처지를 비관해온 것으로 알려진 이 여성은 “남편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유서를 남겼다.
◇어린 자녀와 동반자살? 그런 건 없다=이러한 일들은 종종 심금을 울리는 ‘일가족 동반자살’로 보도된다. 하지만 이젠 이런 인식이 바뀔 때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거부나 저항을 하기 힘든 어린 자녀와 함께 생명을 끊는 사건을 더 이상 ‘자살’로 불러선 안 된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엄밀히 말하면 살인 피의자가 사망해 공소권이 없어진 것일 뿐, ‘동반자살’이 아닌 엄연한 ‘살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부모에게 자녀 생사여탈권이 없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는 얘기다.
검찰은 “서초 세 모녀 살해는 아동학대·가정폭력이 가장 강력한 형태로 표출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망은 2001년 7명에서 2013년 22명으로 늘었다. 1세 미만 영아의 사망이 같은 기간 1명에서 8명으로 급증했다. 대개는 부모의 범행이다. 하지만 2010∼2013년 아동복지법 위반사범이 불기소 처분을 받은 비중은 52.2%에 머물고 있다. 형사정책연구원은 “형사처벌을 하면 피해 아동을 보호할 방법이 없어진다는 현실적 한계가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한국사회에서 훈육과 학대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것도 아동학대 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에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황은영)는 지난해 11월부터 아동보호자문단을 구성, 아동학대를 훈육이 아닌 명백한 범죄로 인식시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비교적 가벼운 범죄로 기소유예 처분하더라도 교육·상담을 조건으로 내거는 것이 큰 특징이다. 검찰 관계자는 “2∼3년 뒤 다시 보면 검찰의 아동학대 범죄 기소율에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부모라는 이유로 어린 자녀를… 동반자살은 명백한 살인
입력 2015-01-13 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