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제안’ 없어…남북관계 회복 ‘진정성’ 피력=박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에 대해 “전제조건은 없다”며 강도 높은 대화 의지를 보여줬다. 하지만 ‘북한의 진정성’ ‘비핵화 진전’ 등 전제조건도 분명하게 거론했다. 대화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박 대통령은 “대화를 통해 (남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열린 마음으로 진정성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북핵 개발 문제를 사례로 거론하며 “비핵화가 전혀 해결이 안 되는데 평화통일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며 단서를 달았다. 이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신년사에서 ‘조건부 최고위급 회담’을 거론한 데 대한 대답으로 여겨진다.
김 제1비서가 ‘흡수통일 중단’ 등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우자, 박 대통령은 북한의 가장 ‘약한 고리’인 비핵화 카드를 꺼낸 셈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를 ‘흡수통일 전위부대’로 지적한 점을 의식한 듯 “통준위를 통해 통일의 비전과 방향에 대해 범국민적, 초당적 합의를 이루겠다”고 했다.
◇“미국 대북 제재 불구하고 우리는 대화로 풀 것”=박 대통령은 미국이 ‘소니 해킹’ 주범으로 북한을 지목하며 경제 제재를 내린 것에 대해서도 “적절한 대응 조치”라고 평가했다. 북한을 향해 “국제사회를 상대로 도발해선 안 되고, 신뢰를 보여주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북·미가) 긴장됐다고 남북대화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다”며 “우리는 우리대로 원칙을 갖고 북한에 대해 대화에 응해 이런 현안을 풀어보자고 쭉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5·24조치’ 해제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의 잘못을 분명히 지적한 뒤 우리 측이 지난해 말 제안한 ‘1월 중 남북대화’의 틀 안에서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 조치의 배경에 대해 “북한 도발에 대해 보상이라는 잘못된 관행을 정상화하기 위해 취해진 조치”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대화의 방법에 대해선 ‘선(先) 대북제재 해제’ 대신 ‘선(先) 대화 재개’ 정공법을 택했다. 박 대통령은 “남북이 당국자 간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야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며 “대화를 여러 번 요청했는데도 북측이 소극적 자세로 응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무산된 2차 고위급 접촉, 통준위-통일전선부 등의 대화를 통해 단계적 관계개선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대북전단 살포, ‘표현의 자유’와 ‘국민안전’ 조율해야=박 대통령은 북한에 유화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특별하게 자극하는 발언도 하지 않았다.
북한이 예민하게 생각하는 인권 문제를 거론하지도 않았다. 김 제1비서는 신년사에서 ‘외세에 청탁한 동족 깎아내리기’를 지양하자고 제안했었다. 비핵화 문제도 북한 미국 중국 삼자를 모두 고려해 ‘줄타기’하듯 발언했다. 박 대통령은 ‘비핵화 진전’을 북한의 진정성 척도로 내세우면서도 “전제조건은 아니다”고 분명히 말했다. 또 “비핵화가 남북관계 개선의 선순환을 도모해 나갈 것”이라는 우회적 화법으로 핵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6자회담 전제조건으로 비핵화를 중시하는 미국을 배려하면서도 선행조건으로 못 박지 않은 것이다. 북한을 충분히 고려했다는 평가다.
대북전단 살포 규제 여부에 대해서도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했다. 박 대통령은 “전달 살포와 관련해선 사실 정부에서 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표현의 자유는 국민 기본권인 만큼 기본적으로 민간단체가 자율적으로 알아서 할 일”이라면서도 “그렇지만 또 지역주민 간 갈등이 생기거나 신변이 위협받아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탈북자 단체의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삐라’ 문제에 유독 예민한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스탠스로 여겨진다.
유동근 기자 dk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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