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소 공기업 인사담당자는 진행 중인 공채 상황을 전하며 요즘 청년들이 불쌍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2명을 뽑는 공채에 700여명이 몰렸는데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일류대 출신이라고 말했다. 1차로 40명을 가리고 최종 면접 대상자 6명을 뽑으면서 최종 합격자들이 과연 회사를 오래 다닐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화려한 학력과 스펙을 가진 이들이 이 회사에서 하게 될 업무와 받을 월급이 양에 안 찰 것이라는 얘기다. 자신이 대학 졸업 후 입사할 때는 경기가 좋아 회사를 골라서 가거나, 떠밀려서 들어가다시피 했는데 요즘은 대학 들어가기도 어렵고 취업도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해 20대의 실업률은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빚을 갚지 못해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20대도 전 연령층에서 가장 많이 늘었다. 20대 취업자 중에서도 10명 중 6명이 비정규직이다.
여기에 상당수 기업들은 2016년 60세 정년 의무화가 시행되면 당장 신규 채용부터 줄일 뜻을 내비치고 있다. 과거에는 부모 세대는 고생했어도 자식들은 잘살게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자녀들의 생활이 부모보다 못해지는 역전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실업과 취업난이 불가피한 경제상황
실업은 단순히 생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성과 자존감을 파괴할 수 있다. 명문대를 나온 강남의 40대 가장이 부인과 두 딸을 살해한 것도 실업에서 출발했다. 가족들에게 실직 사실을 숨기면서 고시원으로 출근하고 주식 투자에 실패하면서 깊은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다. 10억원의 재산이 남아 있음에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실업이 단순한 돈 문제를 넘어 실존의 문제까지 건드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대내외적인 경제 여건을 볼 때 이러한 실업의 고통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효과적인 일자리 대책을 내놓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 정책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 정책과 함께 반드시 필요한 것이 또 있다고 생각한다. 어려움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과 문화다. 원망, 불평, 분노, 자존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은 견디면서 희망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가 이 정도나마 살고 있는 것은 감사할 일이다. 어릴 때 같은 마을에 살던 내 또래의 아이가 밥 한공기와 간장만 놓인 상을 보여주며 밥이 있다고 자랑했다. 그 애는 밥 한술을 뜨고 간장 한 수저를 가득 입에 넣었다. 밥 굶는 것이 예사였던 그 집 어머니가 그날은 피를 팔아서 쌀 한 되를 사왔다는 사실을 나중에 어른들의 설명을 듣고 알았다. 밥이 없어 굶던 시절이 언제였는데 지금은 비만을 걱정해 굶는 시대가 됐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 숱한 전쟁이 있었지만 6·25전쟁 이후 전쟁 한번 겪지 않고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다.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로운 시대다.
어려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8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민행복지수는 한국이 27위로 최하위권이고 자살률은 10년 연속 1위다. 부의 양극화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주요 원인이라고도 하고 불안한 사회구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남과 비교해서 느끼는 불행감, 배고픈 것이 아니라 배 아픈 것은 복지의 대상도 아니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세 모녀를 살해한 가장에게 남겨진 10억원을 두고 10억원밖에 안 남았다고 할 것인가 10억원이나 남았다고 할 것인가. 결국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하느냐에 행복이 달려 있는 것은 물론이고 고난에 대처하는 힘이 나온다.
이제 새로운 가치들을 세워나가야 할 때가 됐다. 가족들과 둘러앉아 먹는 한 끼의 식사에 감사하면서 어려운 여건에서도 건실한 생활을 하는 것이 축복이라는 공감대를 만들어가야 한다. 젊은이들이 일류대와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고교 졸업 후 중소기업에 들어가서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공동체 사회가 돼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이런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은 알맹이도 없는 일자리 대책을 쏟아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신종수 편집국 부국장 jsshin@kmib.co.kr
[돋을새김-신종수] 그에게는 아직 10억원이…
입력 2015-01-13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