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국가 스페인에는 이슬람 유적들이 적잖다. 8세기 초부터 15세기 후반까지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 영향으로 칼리프 왕조, 나스르 왕국의 수도였던 코르도바와 그라나다에는 메스키타, 알람브라 궁전 등 당시의 건축물들이 다수 남아 있어 유럽 속의 작은 아랍을 느낄 수 있다.
711년 이슬람교도의 침략으로 무슬림 지배에 들어간 스페인은 800년에 걸쳐 ‘레콘키스타(Reconquista·국토회복운동)’를 전개한다. 이 과정에서 가톨릭과 무슬림 사이에 살육전이 끊이질 않았다. 기나긴 보복의 악순환은 1492년 나스르 왕국의 마지막 왕이 스페인에 항복하면서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6세기 가까이 흐른 지금 유럽에서 두 세력이 다시 부딪히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의 예언이 현실화되는 건지 모른다. 헌팅턴은 1996년 펴낸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문명의 충돌을 냉전 종식 후 국제정치의 가장 심각한 분쟁으로 꼽았다. 그는 “이념은 가고 문명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면서 “문명의 갈등 중심에 기독교 서구문명 대 이슬람 및 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충돌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럽의 반이슬람 정서가 심상찮다.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의 무자비한 테러가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지만 기저에는 각국에서 증가하는 무슬림에 대한 경계심이 깔려있다. 전체 인구에서 무슬림이 차지하는 비율이 프랑스의 경우 7.5%, 영국과 독일은 각각 5%에 이른다고 한다. 독일에서 ‘유럽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PEGIDA)’의 시위가 시나브로 세를 확산하고 있고, 프랑스에선 2022년 무슬림이 프랑스를 지배한다는 내용의 소설 ‘복종’이 주목을 받는 것도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혐오증)’의 단면이다.
그러나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낳을 뿐이다. 다른 종교와 인종을 배척하는 극우세력의 준동을 막고 유럽을 건강하게 지탱해준 원동력은 바로 관용의 정신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등 40여개국 정상과 100만여명의 세계인이 11일 파리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공화국 행진’을 벌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한마당-이흥우] ‘문명의 충돌’
입력 2015-01-13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