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스타 예감] (2)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 박계훈

입력 2015-01-13 00:51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차세대 골리(골키퍼) 박계훈이 지난 7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아이스링크에서 블로킹 패드를 착용한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자만하지 않고 꾸준히 실력을 닦아 평창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 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병주 기자
“대포알처럼 날아오는 퍽에 잘못 맞으면 절로 ‘억’ 소리가 난다니까요.” (잠깐 뜸을 들인 뒤) “그래도 제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누굴 원망 하겠어요”라며 웃는다.

그는 가슴과 다리에 보호대를 찬다. 왼손엔 캐처 글러브를 낀다. 오른쪽 팔뚝에 블로킹용 패드를 착용하고, 오른손으론 대형 스틱을 잡는다. 스케이트와 안면 마스크 착용은 기본이다. 장비를 모두 합하면 20㎏에 달한다. 온몸을 짓누르는 ‘갑옷’을 입고 시속 150㎞로 날아오는 퍽을 향해 몸을 날린다. “경기를 치르고 나면 골병들어요.” 그러면서도 골대 앞에 서면 행복하다고 한다.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골리(골키퍼) 박계훈(23·고려대). 혜성처럼 등장한 차세대 기대주로 꼽힌다. 아이스하키에서 골리는 야구의 투수와 포수를 합쳐 놓은 것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다. 공수 전환이 팀당 200∼300번 나올 정도로 빠르게 전개되는 경기에서 뛰어난 골리가 없는 팀은 대량 실점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골리는 한국의 취약 포지션이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출신의 백지선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은 지난해 10월 파격적으로 대학생 박계훈을 발탁했다. ‘원석’을 알아본 것이다. 송치영 고려대 플레잉코치는 “박계훈은 키가 184㎝로 한국 골리들 중 신체 조건이 가장 좋다”며 “기본기가 탄탄하고 골을 먹어도 쉽게 흔들리지 않아 대표팀 골리로 손색이 없다”고 치켜세웠다.

박계훈은 지난해 10월 영원한 라이벌 연세대를 상대로 17년 만의 정기전 승리를 이끌었다. 지난해 선방률은 92.5%에 달했다. 이는 세계적인 골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기록이다.

골리는 경기당 50∼60개의 슛을 막아야 한다. 상대 공격수들과 날카로운 신경전도 벌어야 한다. 이 때문에 체력과 기술 그리고 두둑한 배짱이 필수 조건이다. 박계훈에게 쉽게 소화하기 힘든 골리 포지션을 맡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물어 봤다.

“경희초등학교 2학년 때 툭하면 친구랑 싸우는 절 보고 담임선생님이 아이스하키를 하라고 권유하셨어요. 그러면 싸움질을 안 할 거라고 생각하신 거죠. 처음엔 공격수를 맡았는데 골리 자리가 비어 임시 골리로 나서다가 결국 주저앉게 됐어요. 하하하….”

박계훈은 지난해 11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2014 유로 아이스하키 챌린지(EIHC)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한국(당시 세계 랭킹 23위)과 이탈리아(18위)의 2차전에서 박계훈은 선발로 출장했다. 1차전에서 헝가리에 1대 6으로 패한 터라 어깨가 무거웠다. 박계훈은 3대 3으로 비긴 뒤 이어진 페널티슛아웃에서 선방해 한국의 2대 1 승리를 이끌었다. 화려한 대표팀 데뷔전이었다. ‘백지선호’는 유럽의 강호들을 잇달아 꺾는 파란을 일으킨 끝에 2승1패(1연장승 포함·승점 5)를 기록하며 폴란드(2승1패·승점 6)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다.

“강호 이탈리아를 이기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기고 나니 멍했고, 그냥 좋았어요. 마지막 페널티슛아웃을 막은 뒤엔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박계훈은 당시의 감동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의 목표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출전이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은 큰 영광입니다. 하지만 노력 없이 올림픽 무대에 오를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선 올봄에 졸업한 뒤 실업팀에 진출해 실전 경험을 많이 쌓고 싶습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