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이상 방치된 불길=10일 오전 9시13분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 대봉그린아파트 1층 우편함 앞에 4륜 오토바이가 들어섰다. 운전자는 주차를 마치고 1분30초가량 오토바이를 살피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9시15분40초 이 오토바이에서 불길이 일었다. 9시22분 불은 오토바이를 삼키고 바로 옆 2륜 오토바이로 옮겨갔다. 불은 겨울철 보온을 위해 설치한 비닐 차광막으로, 다시 주차장 내부 우레탄폼 마감재로 옮겨 붙으며 덩치를 키웠다.
9시26분 검은 연기가 주차장 내부를 가득 메운 장면을 끝으로 CCTV는 꺼졌다. 이와 동시에 한 주민이 112상황실에, 9시27분에 또 다른 주민이 119상황실에 신고했다. 불길이 시작된 지 10여분 만에 첫 신고가 이뤄진 것이다. 신고 접수 6분 만인 9시33분 소방관 선발대가 도착했지만 이미 건물은 검은 연기에 휩싸였다.
대봉그린아파트 1층은 벽면 없이 기둥으로만 지탱하는 ‘필로티 구조’다. 이렇게 하면 층수에서 제외돼 건축법상 높이 제한 규정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다세대주택이나 오피스텔 등에 널리 쓰인다. 필로티 공간은 ‘외부’로 인정되는 탓에 방화문이 아닌 일반 유리문 등이 주로 설치된다. 주차장에서 난 불이 피난계단으로 번지는 것을 아예 막기 힘든 구조였다.
◇1.5m 간격으로 붙어 있는 건물=화재는 곧바로 옆 건물인 드림타운Ⅱ와 해뜨는마을, 주차타워를 거쳐 4층짜리 원룸 건물 등으로 번졌다. 대봉그린아파트를 포함해 세 건물은 도면상 1.5∼1.7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건물 간격을 6m 이상 둬야 하는 아파트와 달리 도시형 생활주택이라 ‘건물 간 간격 1m 이상’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주민들은 “소방헬기의 로터 바람 때문에 불이 옆 건물로 옮겨 붙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석원 의정부소방서장은 “고층건물 화재 시 인명 구조 최우선 원칙에 의해 헬기로 구조작업을 나서게 되는 것”이라며 “옥상에서 심정지 환자 등이 긴급하게 구조를 요청하던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는 “건물 간격이 1m밖에 안 될 정도로 붙어 있는 데다 외벽이 가연재인 스티로폼으로 마감돼 있어 유독가스가 나오고 불길이 확산됐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들 건물 외벽 내부는 스티로폼이 든 가연성 단열재 ‘드라이비트’로 마감처리돼 있었다. 소방 선발대가 도착하기까지 17분간 불길은 급속도로 퍼졌다.
여기에다 대봉그린아파트와 드림타운Ⅱ는 10층 이하 건물로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대상이 아니다. 해뜨는마을은 지하 1층, 지상 15층에 연면적 4285㎡ 규모로 스프링클러가 있었지만 외벽이 타던 초기엔 작동하지 않다가 내부로 불이 번지면서 작동했다. 해뜨는마을 주차타워에 주차된 차량들은 ‘폭탄’ 역할을 하며 불길에 가속도를 붙였다.
소방 당국은 헬기 4대 등 장비 155대와 소방관 500명을 동원했지만 유일한 진입로인 건물 앞 골목길이 좁아 어려움을 겪었다. 이 길조차 주차된 차량들로 붐볐다. 건물 뒤편은 지하철 철로라 접근이 아예 불가능했다.
◇한 층에 10가구 원룸 밀집=피해를 본 건물들은 한 층에 10가구가량의 원룸이 밀집된 구조로 이뤄져 신속한 대피가 어려웠다. 소방 당국은 각 가구들이 잘게 나뉘어 있고, 집집마다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가 불을 끄고 구조하느라 화재 진압이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안전장치가 허술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입주민들은 화재경보나 대피 방송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국민안전처는 화재 당시 경보기가 작동했다고 해명했다.
의정부=전수민 강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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