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아파트 큰 불-화재·구조 상황 재구성] 밤늦게까지 일하던 서민들, 토요일 아침 단잠 자다

입력 2015-01-12 01:33 수정 2015-01-12 10:10
11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 아파트 화재 사고 현장에서 경찰 과학수사대 감식반원들이 현장 조사를 하고 있다. 서영희 기자

10일 오전 9시30분쯤 경기도 의정부의 주거용 오피스텔 해뜨는마을 주민 A씨는 집 청소를 하며 한가롭게 주말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매일 서울로 출퇴근하는 그는 토요일 아침이 유일하게 집안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때 시끄러운 청소기 소리 너머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A씨는 “창문을 열었더니 시뻘건 불길이 확 올라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건물 외벽을 타고 넘실거리던 불길은 순식간에 집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오전 9시25분쯤 바로 옆 대봉그린아파트 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10분이 채 안 돼 드림타운Ⅱ, 해뜨는마을과 일부 단독주택까지 번졌다. 간신히 몸만 피했다. 탈출할 때 입고 있던 트레이닝 한 벌만 겨우 건졌다. 그나마 A씨는 깨어 있어 큰 화를 면했다. 잠에 빠져 있다 뒤늦게 탈출한 이웃들은 중환자실 신세를 지고 있다.

피해를 입은 건물 3곳은 주로 직장인과 젊은 부부 등 1·2인 가구가 전·월세 형태로 산다. 임대료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7만원 정도로 인근 평균 시세(보증금 500만원, 월세 40만원)보다 조금 싸다. 지하철 1호선, 경전철 의정부역과 5분 거리여서 서울이나 양주 등지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다. 화재 피해자의 77.3%(99명)가 20, 30대였고 10대 이하도 12명이나 됐다.



인근 B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여기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직업 특성상 밤늦게 귀가하거나 새벽까지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그래서 주말에 늦잠 자다 대피가 늦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화재 당시 급하게 대피한 사람들은 대부분 잠옷 차림이었다.

그러다 보니 무방비 상태에서 화마와 맞닥뜨린 경우가 많았다. 해뜨는아침 아파트에서 계단으로 탈출하다 연기를 마셔 병원에 입원 중인 박기옥(55·여)씨는 “건너편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봤지만 처음엔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내 복도 유리창에 금이 가더니 쩍쩍 소리를 내며 유리창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위험을 직감했다고 한다. 자고 있던 딸을 깨워 황급히 탈출했다. 박씨는 “내가 없었으면 딸도 꼼짝없이 죽었을지 몰라 아찔하다”며 몸을 움츠렸다.



한 30대 남성 주민은 “산소마스크를 쓰고 탈출하던 중 옆에서 팔다리가 축 처진 주민을 소방관들이 들고 나르는 걸 봤다”며 참혹했던 상황을 전했다. 대봉그린아파트 바로 옆에 붙어 있어 전소된 다세대주택 주민 성명옥씨는 “아이 넷을 데리고 대문을 열고 나오니 옆 건물 창문에서 사람들이 툭툭 떨어져 내렸다”며 다급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현장을 목격한 박진희(23)씨는 “사람들이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살려 달라고 외치고, 건물 옥상에서 건너편 건물 옥상으로 위태롭게 넘어가는 모습을 봤다”며 “새카맣게 탄 시신이 실려 나오는 것을 보고 너무 무서워 한동안 꼼짝도 못했다”고 말했다.



사고대책본부는 사고 직후 현장에서 500m 떨어진 경의초등학교 체육관에 이재민 임시대피소를 마련했다. 11일 오전 체육관은 이재민 100여명과 수십명의 관계자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한두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노란 천막 안에 주민들이 넋 나간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오전 9시30분쯤 망연자실한 표정의 20대 여성이 “엄마, TV도 냉장고도 다 녹았다”며 터벅터벅 걸어 들어왔다. 불 타버린 집을 보고 온 길이라고 했다. 천막 안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킨 어머니가 그를 꼭 끌어안으며 “살아 있잖아”라고 읊조렸다. 어머니는 “목숨이라도 건졌으니 냉장고 걱정도 하지, 죽은 사람들은 어쩌겠느냐”며 딸을 다독였다.

오전 10시쯤 60대 남성이 온몸에 재를 뒤집어 쓴 푸들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대피소로 뛰어들어 왔다. 이 강아지는 전소된 드림타운Ⅱ 10층에서 뒤늦게 구조됐다. 밤새 침대 밑에 숨어 있다 경찰과 함께 들어선 집주인에게 발견됐다.

의정부=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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