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을 나가보니 사람들이 1, 2명씩 뛰어올라왔다. 1층에서 불이 나 현관으로 탈출하기 어렵게 되자 위로 올라가던 참이었다. 비번일이라 늦잠을 자던 진 소방관도 겉옷만 걸친 채 옥상으로 달려갔다. 채 한 층을 오르기도 전에 검은 연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한 모금만 마셔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숨을 참고 필사적으로 뛰었다.
오전 9시31분. 진 소방관 등 주민 13명이 꼭대기 층에 도착했지만 옥상으로 나가는 출입구는 잠겨 있었다. 밀려오는 연기를 피해 출입구 위 기계실로 올라갔지만 검은 연기가 스며들었다. 한 젊은 남성은 휴대전화로 아버지에게 ‘마지막인 것 같다. 사랑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때 기계실 창문 밖으로 녹색의 방수 코팅된 옥상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기계실 창문에서 옥상 바닥까지 높이는 약 2.5m. 진 소방관은 창문을 열고 옥상으로 뛰어내렸다. 공포에 빠진 사람들이 뒤엉켰다. ‘아차’ 싶었다. 그는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안 그러며 다 다쳐요. 내가 받칠 테니 벽에 기대는 느낌으로 뛰어내리세요”라고 했다. 한 명씩 서로를 받쳐주며 창에서 내려섰다. 그래도 3명이 발목과 무릎을 다쳤다.
옥상도 이미 ‘연기 지옥’이었다. 사람들을 진정시켰지만 속으론 살 확률이 60%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바로 옆 약 2m 정도 떨어진 드림타운Ⅱ의 옥상이 보였다. 젊은 남성이면 건널 수 있겠지만 노부부와 여성은 어려워 보였다. 다시 연기 속에서 난간을 붙잡고 헤맸다. 그러다 두 건물 사이에 마주보고 뻗은 구조물을 발견했다. 건물 사이 거리는 1m 정도밖에 안 됐다.
진 소방관이 먼저 건너가 기마자세를 취했다. “젊은 남성분,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소리쳤다. 둘은 건물 양쪽에 마주 앉아 사람들 손을 잡고 한 명씩 대피시켰다. 13명이 드림타운Ⅱ 건물로 건너오자 소방관 2명이 옥상에 도착해 그들을 맞았다. 턱 밑까지 밀려온 죽음이 생존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11일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한 진 소방관을 만났다. 그는 “소방관이지만 솔직히 모든 상황이 다 무서웠다. 사람들이 중간에 연기를 마시고, 뛰어내리다 다치고, 옆 건물로 건너갈 때 떨어질까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의정부경찰서 신곡지구대 소속 이재정(35) 순경과 경기경찰청 10기동대 임성규(36) 순경도 주민을 구하러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가 부상했다. 이 순경은 3층에, 임 순경은 7층에 갇혔다. 이 순경은 에어매트 위로 뛰어내려 목숨을 구했다.
의정부=글·사진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