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아파트 큰 불] 마침 불난 아파트 8층에 비번인 소방관 있었다

입력 2015-01-12 01:31 수정 2015-01-12 10:15
진옥진 소방관이 11일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진 소방관은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 중이다.

연기가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속도는 사람보다 빨랐다. 경기도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8층에 살던 의정부소방서 송산119안전센터 진옥진(34) 소방관은 10일 오전 9시27분 소방벨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 창밖으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현관을 나가보니 사람들이 1, 2명씩 뛰어올라왔다. 1층에서 불이 나 현관으로 탈출하기 어렵게 되자 위로 올라가던 참이었다. 비번일이라 늦잠을 자던 진 소방관도 겉옷만 걸친 채 옥상으로 달려갔다. 채 한 층을 오르기도 전에 검은 연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한 모금만 마셔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숨을 참고 필사적으로 뛰었다.



오전 9시31분. 진 소방관 등 주민 13명이 꼭대기 층에 도착했지만 옥상으로 나가는 출입구는 잠겨 있었다. 밀려오는 연기를 피해 출입구 위 기계실로 올라갔지만 검은 연기가 스며들었다. 한 젊은 남성은 휴대전화로 아버지에게 ‘마지막인 것 같다. 사랑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때 기계실 창문 밖으로 녹색의 방수 코팅된 옥상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기계실 창문에서 옥상 바닥까지 높이는 약 2.5m. 진 소방관은 창문을 열고 옥상으로 뛰어내렸다. 공포에 빠진 사람들이 뒤엉켰다. ‘아차’ 싶었다. 그는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안 그러며 다 다쳐요. 내가 받칠 테니 벽에 기대는 느낌으로 뛰어내리세요”라고 했다. 한 명씩 서로를 받쳐주며 창에서 내려섰다. 그래도 3명이 발목과 무릎을 다쳤다.



옥상도 이미 ‘연기 지옥’이었다. 사람들을 진정시켰지만 속으론 살 확률이 60%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바로 옆 약 2m 정도 떨어진 드림타운Ⅱ의 옥상이 보였다. 젊은 남성이면 건널 수 있겠지만 노부부와 여성은 어려워 보였다. 다시 연기 속에서 난간을 붙잡고 헤맸다. 그러다 두 건물 사이에 마주보고 뻗은 구조물을 발견했다. 건물 사이 거리는 1m 정도밖에 안 됐다.



진 소방관이 먼저 건너가 기마자세를 취했다. “젊은 남성분,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소리쳤다. 둘은 건물 양쪽에 마주 앉아 사람들 손을 잡고 한 명씩 대피시켰다. 13명이 드림타운Ⅱ 건물로 건너오자 소방관 2명이 옥상에 도착해 그들을 맞았다. 턱 밑까지 밀려온 죽음이 생존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11일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한 진 소방관을 만났다. 그는 “소방관이지만 솔직히 모든 상황이 다 무서웠다. 사람들이 중간에 연기를 마시고, 뛰어내리다 다치고, 옆 건물로 건너갈 때 떨어질까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의정부경찰서 신곡지구대 소속 이재정(35) 순경과 경기경찰청 10기동대 임성규(36) 순경도 주민을 구하러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가 부상했다. 이 순경은 3층에, 임 순경은 7층에 갇혔다. 이 순경은 에어매트 위로 뛰어내려 목숨을 구했다.

의정부=글·사진 양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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