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反이슬람 확산] 식료품점 인질들 살린 영웅은 무슬림 직원

입력 2015-01-12 00:25

지난 9일(현지시간) 파리 유대인 식료품점에서 발생한 인질극 당시 침착한 대처로 손님들의 목숨을 구한 무슬림 점원의 용기 있는 행동이 화제다. ‘영웅’이라는 찬사와 함께 ‘무슬림 마녀사냥’을 자제하자는 여론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유대인 식료품점인 하이퍼 코셔의 점원인 라싸나 바실리(24·사진)는 인질범 아메디 쿨리발리(32)가 가게에 들이닥치자 쇼핑 중이던 유대인들을 즉각 지하 냉장실로 안내했다.

바실리는 10일 프랑스 BFMTV와의 인터뷰에서 “손님들과 함께 냉장실로 향한 뒤 조명과 냉장실 전원을 끄고 그들을 들여보냈다”면서 “손님들에게 침착하고 조용히 있을 것을 당부한 뒤 밖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건물 내부 구조에 익숙한 그는 이후 화물용 승강기를 타고 몰래 건물 밖으로 탈출했다. 하지만 경찰이 바실리를 공범으로 의심해 1시간반 동안 수갑을 채우고 억류했다. 이후 오해가 풀리자 바실리는 건물 구조와 손님들이 숨은 위치를 경찰에 알려 수색을 도왔다.

생존한 인질 15명 중 냉장실에 숨었던 이들의 정확한 숫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파리 시의원인 말리크 예투는 6명의 손님과 아이 한 명이 냉장실에서 구조됐다고 전했다. 반면 BFMTV 등 현지 언론은 바실리가 약 15명을 냉장실로 데리고 갔다고 했다. 이는 손님들이 숨은 지 10분쯤 뒤에 여성 계산원이 건물을 돌면서 “위층으로 다 올라오지 않으면 죽인다”는 테러범 쿨리발리의 협박을 전하자 발각을 우려한 일부가 위층으로 올라갔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같은 사연이 전해지면서 바실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다. 바실리의 페이스북에는 그의 용기와 기지를 칭송하는 사람들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

허핑턴포스트는 “바실리 덕분에 테러로 인해 모든 무슬림을 악마화하는 잘못된 대응이 희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실리는 BFMTV 인터뷰에서 영웅적인 행동을 한 이유를 묻자 “우리는 모두 형제이며 (테러는) ‘기독교인이냐 유대인이냐 무슬림이냐’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이 같은 위기 상황에 우리는 모두 한 배를 타고 있으며 서로 도와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