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8선을 넘을 때 죽을 고비를 만났습니다. 그때 ‘저를 살려주시면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고 서원했어요. 이제 나이 마흔인데 더 지나면 그 서원을 지키기 어렵게 됩니다.”
1970년 어느 날, 경남 거창고 홍종만(1930∼1982) 교감은 이 말을 남기고 사표를 냈다. 2남4녀를 둔 가장이었던 그는 목사 안수를 받은 뒤 선교사로 투신하기 위해 홍콩으로 건너갔다. 홍콩한인연합교회 3대 목회자로서 중국과 외부 세계의 가교 역할을 하며 중국선교에도 힘을 쏟았다. 한인세계선교사회 전신인 한국선교사동지회 초대 회장으로도 헌신했다. 유관지(북한교회연구원) 목사는 “전적인 순종과 헌신의 삶을 이어온 홍 선교사의 모습을 이 시대에도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가 지난 9일 경기도 분당 한신교회(이윤재 목사)에서 올해 첫 월례 발표회를 열었다. 발제자들은 ‘내가 닮고 싶은, 존경하는 사람’을 주제로 저마다 신앙의 거울로 삼고 있는 ‘믿음의 선배’들을 회고했다.
이윤재 목사는 잔느 귀용(1648∼1717)의 영성을 반추했다. 귀족의 딸이었던 그는 22세 때 연상의 귀족과 결혼했지만 첫날부터 남편의 병 수발을 들어야 했고 시어머니의 학대까지 받았다. 전염병으로 두 아들과 딸을 잃었고, 남편이 죽은 뒤에는 재산까지 다 빼앗겼다. 설상가상 이단으로 몰려 바스티유 감옥에서 7년을 보낸 데 이어 유배생활도 감내해야 했다. 성경 속 ‘욥’의 고난이 연상될 정도로 고통스런 삶이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사랑은 깊었다. 침묵과 묵상을 통한 주님과의 만남을 쉬지 않았다. 이 목사는 “우리도 하나님 앞에 선 인간으로서 얼마나 하나님께 만족하며, 하나님과 연합하며 살고 있는지 순간순간 자문하며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넷 브라이트(91) 여사는 김윤희 FWIA(Faith&Work Institute Asia) 대표의 멘토다. 국제대학생선교회(CCC) 창설자인 빌 브라이트 목사의 아내인 브라이트 여사는 현대판 ‘잠언 31장의 여인’으로 꼽힌다. 김 대표는 “여러 차례 가까이 할 기회가 있었는데, 우아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온유하며 강인함과 지혜가 넘쳤다”면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신앙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협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최이우(종교교회) 목사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일사각오’ 신앙의 표본을 보인 주기철(1897∼1944) 목사를 꼽았다. 최 목사는 “신앙의 충실함이 곧 애국이라는 걸 신사참배 거부운동에서 배웠다”면서 “주 목사님의 목회는 ‘오직 예수’ 신앙으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한국피스메이커 대표인 이철(남서울교회 은퇴) 목사는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1902∼1950) 목사를 가장 존경하는 목회자로 소개했다. 이 목사는 “그는 용서와 화해의 삶을 산, 우리 시대 가장 아름다운 피스메이커였다”고 강조했다.
안만수(화평교회 원로) 목사는 죽으나 사나 ‘오직 성경’을 강조한 정암 박윤선(1905∼1988) 목사를 닮고 싶은 목회자로 꼽았고, 신동우(산돌중앙교회) 목사는 20년간 인도네시아 밀림 오지를 돌며 순회 선교사로서 384개 교회를 개척하다 순교한 고 서만수 선교사를 존경하는 목회자로 소개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고난 속 신앙의 꽃 활짝… 선배들의 길을 따르겠습니다
입력 2015-01-12 02:09 수정 2015-01-12 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