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아파트 큰 불] “쉴 틈 없이 일만하던 딸아, 왜 이러고 있니…”

입력 2015-01-12 01:29 수정 2015-01-12 10:15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딸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흐느낌만 빈소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경기도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로 세상을 뜬 한경진(26·여)씨의 유족들은 급하게 차린 빈소에서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한씨의 영정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대학에서 웹 디자인을 전공한 한씨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지난해 봄 본가인 경기도 양주를 떠나 이곳으로 이사했다. 딸의 포부가 가상해 부모는 선뜻 3000만원을 보태줬다. 곧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한 한씨는 휴식도 없이 업무에 매달렸다고 한다. 컴퓨터로 작업하는 일이라 마우스를 많이 사용해 손목이 시큰거린다고 하자 어머니(48)는 석 달 전 제법 비싼 손목 보호용 마우스 세트를 사줬다.



아버지(54)는 20여년간 환경미화원으로 한푼 두푼 모은 돈을 둘째 아들 일본 유학비와 한씨의 집 보증금으로 내줬다. 한씨도 이런 부모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려 고교와 대학 시절 내내 장학금을 받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화재 전날 저녁에 딸 한씨와 식사를 함께했다. 홀로 떨어져 지내는 딸이 못내 안타까워 집에 보내기 전 옷도 사줬다. 한씨는 “마음에 쏙 든다”며 활짝 웃었다고 한다. 헤어진 뒤 오후 10시쯤 카카오톡으로 “사랑하는 딸, 잘 자렴”이란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게 딸과의 마지막 대화가 됐다.



한씨의 이모부(52)는 “우리가 알고 싶은 건 어떻게 죽게 됐는지,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인데 아무도 말을 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정부 화재 참사로 한씨 외에도 안현순(68·여) 이광혁(44) 윤효정(29·여)씨가 목숨을 잃었다. 각각 인근 병원에 흩어져 안치됐다. 유족들은 조만간 대책위원회를 만들 예정이다.

의정부=임지훈 기자 zeitgeist@kmib.co.kr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