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밑 우리 사회는 ‘갑질’ 논란으로 들끓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으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갑을문화는 해외에서도 토픽감이 됐다. 2년 전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욕설 파문으로 사회 이슈화된 비정상적 갑질은 국민적 지탄 대상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러다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지위를 이용해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행위’를 의미하는 신조어 갑질이 국어대사전에 표준어로 실릴 날이 멀지 않을 듯하다.
올해 역시 갑질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열흘 남짓 지난 기간에 소셜커머스 업체 위메프와 스크린골프 업계 대표주자 골프존의 횡포, 권기선 부산지방경찰청장의 욕설 파문과 부천 백화점 모녀 사건에 이르기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사회의 치부가 드러나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이 구속되는 땅콩 회항 교훈을 벌써 잊은 듯 상대적 강자의 갑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위메프는 수습사원 11명을 고용, 정직원이 하는 일을 2주일간 시킨 뒤 모두 해고했다 여론의 역풍을 맞자 재고용했다. 이 같은 노동착취는 비단 위메프 한 곳에 국한된 사례가 아니다. 재계에서 오래전부터 써오던 수법이다. 정규직으로 채용할 것처럼 유인해 실컷 일을 시킨 다음 인턴 기간이 끝나기 무섭게 해고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년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처벌은 솜방망이다. 갑질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다.
자신보다 나이 많은 부하 간부에게 상습적으로 폭언한 권기선 부산지방경찰청장에게 경찰청이 내린 징계는 겨우 구두경고다. 말이 좋아 징계이지 신분상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 그는 욕한 이유를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소통하며 일하자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친근한 분위기에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해도 된다는 건지 뻔뻔하기 그지없다. 이런 자세로 부하를 제대로 통솔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모두가 갑이 될 수 없는 이상 갑을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논란과 시비는 갑을관계를 상생이나 협력의 수평적 관계가 아닌 종속과 상하의 수직적 관계로 오인한 데서 발생한다. 땅콩 회항 및 부천 백화점 모녀 사건은 회사 직원과 아르바이트생을 자신의 소유물이나 하인쯤으로 여겨 일어났다. 갑을관계는 영원불변이 아니다. 경우와 상황에 따라 갑도 되고, 을도 될 수 있는 유동적 관계다. 역지사지하면 답이 보인다.
[사설] 꼴불견 ‘갑질’ 역지사지로 풀자
입력 2015-01-12 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