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중국 정부의 여론 반영 속도에 깜짝 놀라곤 한다.
에이즈에 걸려 마을에서 추방될 위기에 처한 여덟 살 소년 쿤쿤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달 17일이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인터넷 사이트 인민망을 통해 처음 보도된 뒤 관영 CCTV와 일간지들이 앞 다퉈 소개했다. 여론은 들끓었다. “자기 자식이 전염될 수도 있다”며 마을 회의를 통해 추방 결정을 내린 어른들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초등학교 입학도 못하고 외톨이로 지내야 했던 쿤쿤이 학교 수업을 받기 시작한 것은 첫 보도가 나온 후 5일 만이었다. 쿤쿤이 사는 쓰촨성 시충현 현정부는 쿤쿤을 위한 종합 대책까지 마련했다. 쿤쿤만을 위한 전담 교사가 배치됐고, 에이즈 치료는 국가에서 책임지고 심리 치료까지 병행하기로 했다고 한다.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설날)’의 전날 밤인 ‘추시(除夕)’를 공휴일로 포함시킬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게 여론을 반영해 결정됐다. 중국 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춘제 당일보다는 온 가족이 모여 음식을 나눠 먹는 추시를 더욱 중요시한다. 건국 이후 공휴일에 포함돼 있지 않던 추시는 2007년 공휴일로 됐다가 다시 2013년에는 제외됐다. 여론이 좋지 않자 중국 정부는 런민대학에 의뢰해 온라인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70% 이상이 추시를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오자 정부는 기존 음력 1월 1∼3일 연휴를 올해부터는 12월 31일∼1월 2일로 조정했다.
2015년 새해를 불과 20여분 앞두고 발생한 상하이 압사 사고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처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36명의 꽃다운 목숨을 앗아간 대형 참사에도 책임을 지는 사람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보다는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언론 통제에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외신 보도를 보면 지난 4일에는 희생자 가족들이 상하이시 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적절한 보상과 시신의 반환을 요구한 시위였다. 시 당국은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시신 인도를 최대한 늦췄다. 이에 대한 중국 언론의 보도는 없었다. 5일 아침에서야 유가족들은 참사 현장을 찾을 수 있었다. 이때도 취재하는 언론은 외신뿐이었고 당국의 엄격한 통제는 계속됐다. 유가족들은 경찰의 밀착 감시를 받고 있고 비판 글을 올리는 네티즌들은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언론은 부정적인 보도가 ‘국가의 안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보도를 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고 한다.
상하이시의 최고 책임자 한정 상하이 당서기는 사건 발생 일주일 만인 지난 7일 “몹시 상심하고 깊은 가책을 느낀다”며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미래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의 댓글을 보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으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글들이 많다. 이만한 사안이면 상하이시 당국에 책임지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두이리 국가여유국(관광국) 부국장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사고가 발생한) 상하이 와이탄 지역에서 조직적인 행사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공공사건의 책임 주체는 명확히 해당 지역 정부에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일부 언론도 3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면 ‘특별 중대사고’로 규정해 국무원이 직접 조사에 나서는 관례가 있는데도 이번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며 의문을 제기한 상황이다.
중국 지도부는 꿈쩍 않는다. 신속히 춘제의 휴일을 조정할 때와는 딴판이다. 받아들일 수 있는 여론과 그렇지 못한 여론이 따로 있다는 얘기다. 한정 당서기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며 두터운 신임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 주석은 집권 이후 한정을 상하이 당서기와 정치국 위원으로 앉혔다. 일각에서는 차기 총리설까지 나오고 있다. 이게 이유일까.
베이징=맹경환 특파원khmaeng@kmib.co.kr
[특파원 코너-맹경환] 중국 여론반영의 이중잣대
입력 2015-01-12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