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권혜숙] 개명

입력 2015-01-12 02:10

“나 개명 신청해서 새 출발할까봐.”

수년 전 ‘개명 쉬워진다’는 기사가 나온 직후에 이혼한 선배 언니 몇몇이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 보호를 위해’ 원칙적으로 개명을 허가하라는 대법원 판결 덕이었다.

얼마 전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명 개정 논란을 보며 그때 일이 떠올랐다. 안철수 의원과의 ‘결혼(통합)’을 기념해 배우자가 원하는 대로 개명했지만 막상 살아보니 신통치 않았고, 그래서 1년도 못 채우고 다시 결혼 전 이름인 민주당으로 바꿔 새 출발의 계기로 삼겠다는 모양새 아닌가.

분위기 전환이나 새로운 각오가 필요하다는 취지는 이해가 되지만 ‘이름 마케팅’이 능사는 아니다. 세계적인 기업 중에도 ‘개명 효과’를 노렸다가 낭패를 본 예가 있다. ‘피자 헛’은 2009년 피자를 뺀 ‘더 헛’으로 이름을 바꾸려다 소비자들의 반발만 사고 뜻을 접었다. 말보로를 만드는 담배 회사 필립모리스는 자신을 모체로 세워진 그룹의 이름을 알트리아(Altria)로 바꿨다. 그런데 이 이름이 ‘이타주의’를 뜻하는 알트루이즘(altruism)과 발음이 비슷해 담배의 부정적 이미지를 씻으려는 얄팍한 작명이라는 구설에 올랐다.

새정치연합은 2000년 이후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대통합민주신당, 통합민주당, 민주당, 민주통합당, 민주당을 거쳐 15년 동안 여덟 번 문패를 바꿔달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민주당’ 이름을 선점한 당이 있어 새정치연합의 당명 교체가 불가하다고 상황을 정리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당 대표 예비경선을 통과한 후보 3명이 모두 당명 개정 의견을 밝혔고, 정동영 상임고문의 탈당으로 야권 재편 가능성이 높아져 여지는 남아 있는 터다.

김춘수 시인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영어로 ‘이름을 부르다’를 그대로 옮긴 ‘call name’에다 복수형을 만드는 ‘s’를 붙이면(call names) 즉 ‘욕을 하다’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이름이 많으면 덕보다 욕된 일이라는 뜻이 아닐까.

권혜숙 차장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