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포커스-문흥호] 시진핑의 대북 인식과 전략

입력 2015-01-12 02:20

새해 벽두부터 남북관계 변화 조짐이 일고 있다. 무성한 통일 논의를 무색하게 하는 남북한의 경색국면이 타개될 것인가. 더 나아가 지속 가능한 양질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인가.

경험적으로 이는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힘들며 싫든 좋든 주변국들의 동조가 필요하다. 특히 북·중 관계의 비중을 고려할 때 한·중 협력은 불가결하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대북한 인식과 전략을 간파해야 하는 이유다.

과거·현재·미래형 인식이 혼재돼 있어

북한에 대한 시 주석의 인식은 과거, 현재, 미래형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우선 ‘과거형 인식’에서 북한은 사회주의 혁명과 정의로운 전쟁을 함께한 맹방이요 혈맹이다. 이러한 인식은 비록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잠재되어 있다.

‘현재형 인식’은 북한 정권의 시대착오적 권력 세습과 부도덕한 통치 행태, ‘인민’의 기본 의식주조차 해결 못하는 지도자의 무능함에 대한 심각한 회의와 불만이다. 특히 시 주석의 현재형 인식에서는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남한의 정치, 경제적 성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의 괴리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

한편 ‘미래형 인식’은 중국이 바라는 한반도 미래상과 결부시켜 북한을 인식하는 것이다. 미래형 인식에서도 북한의 존속과 남북한 세력 균형이 중시되지만 시 주석 특유의 현실적 관점에서 기존의 수세적인 현상유지 전략이 재편되고 있다. 즉, 시 주석의 뇌리에서 한반도의 현상 타파와 남북통일이 아직은 핵심 현안이 아니지만 점차 불가피한 전략적 고려 사항으로 대두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통일문제가 의례적 수준 이상으로 논의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북한 정권의 전도가 밝지 않고, 북·중 관계의 유지비용이 과다하며, 장기적으로 남북통일에 대비한 선제적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시 주석의 인식은 중국의 대북전략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그 핵심은 동아시아 정세가 불안정한 과도기적 상황에서 일단 북한이라는 전략적 자산을 유지하되 북·중 관계를 동맹과 정상, 과거와 미래가 병존하는 형태로 조정하고 정책 방향과 범위를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를 동맹관계와 정상관계를 넘나드는 ‘선택적 균형(arbitrary balancing act)’ 전략이라 칭한다. 이를 통해 중국은 남북한에 대한 압력 행사, 미·일을 의식한 한반도 영향력 확대, 북핵 및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 회피 등의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중국의 이러한 전략은 다른 국가가 답습하기 어려운 중국만의 자산이지만 한계도 있다. 우선 막강한 대북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북한의 존속을 원하는 한 실제 압력 행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중국의 전략 변화에 맞서 북한도 과도한 대중 의존도 축소를 꾀할 것이고 이는 중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은 이미 러·미·일 등과의 관계 변화를 추진하며 이는 중국에 대한 강한 불만과 연계되어 있다.

中 정책변화를 한반도 평화에 활용해야

한편 북한에 대한 중국의 선택적 균형 전략은 한국을 함께 겨냥하고 있다. 다시 말해, 중국은 북한과의 동맹, 정상관계의 수위 조절이 한·중 전략적 협력 수준과 연계되어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실제로 중국 지도부는 한국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 구축 논의, 미군의 전시작전권 환수 재연기 등에 불만을 표하고 은연중에 북·중 관계 강화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 상황에서 중국의 고압적 태도를 성토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시진핑 집권 이후 변모하는 중국의 대외전략과 그 연장선에 있는 대북정책의 변화 과정을 한반도 평화·안정, 통일 환경 조성에 보다 능동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주변국의 공감이 결여된 ‘자기 희망적’ 통일 열기는 자칫 우리의 통일 염원을 더욱 공허하게 만들 수 있다. 애국심만으로 통일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