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돌리기 요법 효과적… 집나간 '이석' 제자리로

입력 2015-01-13 00:53
소리이비인후과 어지럼증센터 이승철 원장이 반고리관으로 흘러든 이석가루를 이석기관으로 되돌려 보내는 이석치환술을 시행하고 있다. 왼쪽 그림은 이석증의 진원지 귓속 전정기관의 해부도. 소리이비인후과, 국가건강정보포탈 제공

주양자(가명·54·여)씨는 2주전 교통사고로 머리를 약간 다친 후 잠자리에서 돌아눕기만 하면 천장이 빙글빙글 돌고 차멀미 증상과 비슷한 메스꺼움을 느껴 A병원을 찾았다. 또 김영옥(가명·70·여)씨는 5개월 전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부터 수시로 천장이 빙빙 도는 어지럼증이 발생했다고 호소했다.

척추나 무릎, 고관절 수술을 받거나 교통사고로 머리를 조금 다친 뒤 갑자기 심한 어지럼증이 나타나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석증(耳石症) 환자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2.4배 많은 것이 특징이다. 또 10명 중 6명 이상(64.1%)이 50대 이상 장·노년층이어서 눈길을 끈다.

도대체 이석증이 무엇이기에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일까.

◇평형추 역할 이석이 제 기능을 못하는 병=사람의 귀에는 소리를 듣는 내이 전정의 달팽이관 외에도 평형기관이 있다. 평형기관은 회전운동을 감지하는 반고리관과 전후좌우·상하 운동을 감지하는 이석기관(난형낭·구형낭)으로 구성돼 있다(그림 참조).

반고리관은 림프액이 들어있어 액체의 움직임으로 회전감각을 감지한다. 반면 이석기관은 이석이라고 하는 작은 돌가루의 움직임으로 직선가속도를 감지하는 게 주 역할이다.

이석증이란 어떤 원인으로 이석기관에 붙어있어야 할 이석의 일부가 떨어져 나와 반고리관으로 들어간 상태를 가리킨다. 이렇게 이석이 제 자리를 벗어나 엉뚱한 곳(반고리관)으로 흘러들어가면 평형감각이 흔들린다. 이석증 환자들이 한결같이 하늘이 빙 도는 것 같이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워진다고 호소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심한 어지럼증과 구역·구토도 유발해=이석증의 대표적인 증상은 어지럼증이다. 머리를 움직일 때 갑자기 심하게 어지러운 증상이 나타나 수 분간 지속된다. 머리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안정을 취하고 있으면 어지럼증은 곧 사라진다.

이석이 들어간 반고리관의 방향에 따라 그 쪽으로 머리를 움직일 때 어지럼증이 더 심하다. 보통 발병 초기와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어지러움을 더 심하게 느끼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완화되는 경향이 있다.

소리이비인후과 어지럼증센터 이승철 원장은 “가만히 안정을 취하고 있을 때는 괜찮다가 고개를 돌리거나 움직일 때 천장이 빙 돌듯이 어지럽다면 한번쯤 이석증을 의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어지럼증에 심한 두통, 보행장애, 시각이상, 어눌한 말소리, 감각이상 등의 마비증상이 동반될 때는 뇌질환을 먼저 의심해야 한다.

◇골다공증과 골절 후 장기간 와병이 3대 원인=이석증은 탄산칼슘이 주성분인 이석이 골다공증으로 약해졌거나 오랫동안 누워 지낸 사람에게 잘 생긴다. 골다공증이 심한 폐경기 여성과 노인에게 이석증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다. 무릎관절 및 척추 수술을 받고 장기간 병상에서 생활하는 경우에도 이석증이 생길 위험이 높아진다. 활동에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두부(頭部) 외상을 동반한 교통사고 후 어지럼증을 느낄 때도 혹시 이석가루가 이석기관에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이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겨울철 빙판길에 넘어져 고관절(엉덩이관절) 골절상을 입은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고관절골절이 골다공증과 외상에 의해 발생하는데다 수술 전후 장기간 병상에서 안정을 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똑바로 누워 고개만 돌리는 에플리법으로 개선=이석증은 대부분 물리치료의 일종인 이석정복술(이석치환술)만으로 1주일 내 치료가 가능하다. 이석치환술은 반고리관으로 들어간 이석가루를 제 자리로 돌려놓는 치료법이다. 하늘을 보고 바르게 누워서 고개만 돌리는 ‘에플리법’과 좌우 한 방향으로 상체를 기울이는 ‘시몽법’이 주로 사용된다.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박홍주 교수팀은 이중 에플리법이 더 낫다고 평가했다. 부천순천향병원, 명지병원 등 전국 11개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이석증 환자 99명을 대상으로 비교한 결과 에플리법이 시술 1주일 뒤 94%대 69%로 시몽법보다 좋은 효과를 보인 까닭이다. 박 교수는 “어떤 경우든 치료 중에는 머리를 심하게 움직이는 행동이나 운동을 피해야 한다”며 “베개를 약간 높게 베고, 잠 잘 때 외엔 장시간 누워있는 것도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