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항명 왜?

입력 2015-01-10 03:45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이 9일 여야 합의는 물론 직속상관인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도 거부한 배경은 무엇일까.

김 수석이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밝힌 공식 입장은 “정치 공세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민 대변인은 오후 브리핑에서 “김 수석은 문건유출 사건 이후 보임해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자신의 국회 출석 여부가 핵심쟁점으로 부각되는 것은 말 그대로 정치 공세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난 25년간 특별한 경우 외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회에 출석하지 않는 게 관행으로 정착됐는데, 정치 공세에 불복해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출석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고 덧붙였다. 김 수석은 다만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런 입장으로 보면, 김 수석은 국회 운영위원회에 ‘현안 보고’를 위해 민정수석이 출석하는 관례를 만들지 않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야당 압박에 밀려 자신이 출석한다면 현안이 터질 때마다 민정수석이 불려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서실장의 지시를 거부하는 ‘극약 처방’을 뒀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김 실장이 직접 출석을 지시한 점, 여야가 합의해 출석을 결정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런 이유로 돌발 사퇴 결정을 내렸다는 관측에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청와대 인사들 사이에서도 “이해하기 어렵다” “본인 외에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지 않으냐”는 반응이 나왔다.

정치권에서는 다른 분석이 나온다. ‘항명’ 차원이 아니라 박 대통령과 비서실장을 향하는 야당의 정치 공세를 자기 선에서 끊기 위한 차원이라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선 청와대의 ‘꼬리 자르기 아니냐’ ‘시나리오가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하지만 이는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상관이자 법조 대선배인 김 실장은 물론 대통령까지 더욱 곤혹스럽게 만든 결과로 볼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추정이다.

역대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이 국회 출석한 사례는 다섯 차례밖에 없다. 노무현정부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요구로 문재인, 전해철 민정수석이 차례로 출석했다. 이 중 3건은 국정감사 증인 신청에 의한 출석이었고, 2건은 해명을 위한 ‘자진출석’이었다. 여당 관계자는 “국회가 현안보고를 위해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국회 출석을 요구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지난해 6월 3기 참모진 개편을 통해 청와대에 입성한 김 수석은 7개월 만에 스스로 옷을 벗게 됐다. 이에 따라 현 정부 들어 민정수석은 3명 모두 문책성 사유로 단기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초대 곽상도 민정수석은 정부 출범 초기 장관(급) 인사들의 잇따른 낙마 등 인사 참사와 관련해 2013년 8월 경질됐고, 후임인 홍경식 수석도 지난해 6월 총리 후보 2명의 연쇄 낙마와 관련,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지고 교체됐다.

남혁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