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靑 내부 시스템 붕괴”… 與도 예상 밖 사태에 당혹

입력 2015-01-10 03:31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해 9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는 갑자기 터진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 사퇴 파동’에 밀려 각종 의혹에 대한 실체 규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파행을 거듭했다. 여야가 김 수석 출석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김 수석이 전격 사퇴 의사를 표명하는 바람에 어수선한 분위기만 이어졌다.

◇‘김영한 사퇴’ 돌발변수로 여야 모두 당혹=여야는 회의 초반부터 김 수석 출석을 놓고 거센 공방을 벌였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김 수석과 ‘문고리 권력 3인방’의 전원 출석을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공방이 이어지자 운영위원장인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회의 시작 50분 만에 정회를 선언한 뒤 여야 간사 간 합의를 요청했다.

속개된 회의에서 돌발 변수가 튀어나왔다. 운영위 새누리당 간사인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주 질문이 끝나면 민정수석이 출석해 답변키로 여야 간 합의됐다”고 말했다. 그런데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출석을) 지시했음에도 본인이 출석할 수 없다는 취지의 행동을 취하고 있다”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 원내대표는 “여야가 합의해 출석을 요구했는데 받아들이지 않으면 중대 사태”라며 또다시 정회를 선언했다.

끝내 김 수석이 출석하지 않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여야 의원들은 당혹스러워했다. 이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상당히 유감”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새정치연합 박완주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청와대 내부 시스템이 얼마나 철저히 망가져 가는지 국민 앞에 민낯을 드러냈다”고 꼬집었다.

◇김기춘 실장, 유출문건 진위 추궁에 “진실 아니다”=야당은 주로 김기춘 비서실장을 상대로 의혹을 추궁했지만 별 소득을 올리지 못했다. 새정치연합 김경협 의원은 ‘청(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 문건의 진위 여부를 캐물었다. 김 의원은 “문건에 나온 김 실장 사퇴설 유포 지시나 검찰 다잡기,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을 날리겠다는 얘기는 실현됐거나 이미 (실현이) 되고 있던 상황”이라며 “문건이 정감록(조선시대에 나온 예언서)이냐”고 따졌다. 김 실장은 “한참 지난 뒤에 이뤄진 정상적인 인사 이동”이라며 “문건과는 별 관계가 없다”고 답했다. 또 “제가 퇴출되지 않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허위 문건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 실장은 유출 문건 내용과 관련해 “그 사람들(이재만·정호성·안봉근)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데 정윤회씨와 전혀 만남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고 했다. 문책론에 대해선 “세 분의 비서관들은 그야말로 비서일 뿐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선실세 운운하는데 ‘잃어버릴 실(失)’ 자의 실세(失勢)가 있을지 몰라도 ‘열매 실(實)’ 자(字)의 실세(實勢)는 없다”고도 했다.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개입 의혹을 보고받은 직후 대통령 보고를 하지 않은 이유가 시원하게 해명되지는 않았다. 김 실장은 허위 문건이라고 확신한 데다 수사의뢰할 만한 결정적 단서를 갖지 못해 언론보도 이후에 조치했다는 취지의 답변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야당은 김 실장의 심증만으로 이번 사태를 그대로 덮어뒀다는 논리를 납득하지 못했다.

김 실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으로부터 미행설을 확인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는 것은 사실로 드러났다. 김 실장은 “(지난해) 1월 하순쯤 박 회장이 ‘미행을 당하는 것 같은데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에게 물어보면 잘 알 것’이라고 했다”며 “그래서 조 전 비서관에게 아느냐고 했더니 ‘전혀 알지 못한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청와대 문건이 박 회장 측에 전해진 데 대해선 “잘못된 일이고 박 회장도 앞으로 근신하라고 조치했다”고 했다.

◇김 실장, ‘김영한 불출석’에 불쾌감 드러내=김 실장은 야당 의원들의 공격적인 질문에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면서는 펜을 든 오른손을 들어 보이며 결연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러나 오후에 재개된 회의에서 김 수석이 국회 출석 요구에 불응하자 다소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김 실장은 “민정수석이 출석하도록 내가 지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출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면서 “여야가 합의해 출석을 요구한 데 대해, 또 비서실장이 지시한 데 대해 공직자가 응하지 않는다면 강력한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김경택 권지혜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