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58·사법시험 24회) 청와대 민정수석은 2012년 7월 공직을 떠났다가 지난해 6월 현 정부 세 번째 민정수석으로 발탁됐다. 마지막 보직은 대검 강력부장이었지만 검찰에 몸담은 24년 중 상당부분을 ‘공안 검사’로 일했다.
김 수석은 경북 의성 출신으로 경북고를 졸업했다. 정통 대구·경북(TK) 인사로 분류된다. 연세대 경제학과와 같은 대학원 법학과를 나와 사시에 합격한 뒤 1988년 광주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대구지검 공안부장, 대검 공안1·3과장,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 등 ‘공안통’ 경력을 쌓았다.
서울지검 공안1부 평검사로 근무하던 92년 김낙중 전 민중당 공동대표 간첩 사건과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을 수사했다. 노무현정부 첫해인 2003년 서울지검 공안1부장을 맡아 ‘희망돼지 저금통’ 모금운동을 주도한 영화배우 문성근씨와 노사모 회원들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이후 부산지검 동부지청, 대구지검, 서울고검 등을 떠돌며 검사장 승진 인사에서 고배를 마시다 이명박정부가 출범한 2008년 3월 검사장에 올랐다. 수원지검장이던 2011년 8월 김진태 검찰총장 등 사법연수원 동기들이 고검장으로 승진할 때 탈락하자 사의를 표했지만 반려됐다. 이후 대검 강력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1년 더 근무했다. 검찰을 떠나서는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 생활을 했다.
청와대는 김 수석 내정 사실을 발표할 때 “엄정하고 공정한 법집행을 통해 법질서 확립에 기여해온 분”이라고 설명했다. 김 수석과 함께 근무했던 검사들은 ‘불같은 성격’ ‘엄한 선배’ ‘원칙주의자’ 등으로 그를 기억했다. 대구지검장 시절 민원인과의 접견 자체를 일절 거부해 지역 유력 인사들로부터 원성을 샀다는 얘기도 있다.
한 검찰 간부는 “검사 시절에도 본인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참지 못했다”며 “국회 출석을 거부한 것도 ‘내가 잘못한 게 없으니 나가서 해명할 일도 없다’고 여긴 것 아니겠나”라고 했다. 김 수석은 평검사 때인 91년 출입기자들과 회식 도중 한 기자가 술 마시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맥주병으로 기자 머리를 내려친 전력도 갖고 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김영한 수석은 누구
입력 2015-01-10 04: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