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1월 서울 미도파백화점 화랑에서의 개인전을 앞둔 이중섭은 신이 났다. 그 그림들을 팔면 살기가 팍팍해 일본으로 보낸 일본인 아내 이남덕(마사코)과 두 아들 태현, 태성을 만나러 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전시 준비 과정을 편지에 담아 보내기도 했다. 전시는 성공적이었다. 출품작 45점 가운데 20점 가량이 판매됐다. 미국문화원 외교관인 아더 맥타카트라도 사갔다. 당시 이중섭은 박수근과 함께 그림이 팔리던 몇 안 되는 서양화가였다.
그런데 수금이 안됐다. 대구에서 이어서 가진 개인전마저 판매가 엉망이 되자 생활고에 시달리던 예술가 가장 이중섭은 폐인이 됐다. 결국 건강이 악화돼 1956년 9월 40세의 한창 나이에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홀로 죽음을 맞았다.
기러기 아빠 이중섭이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가족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현대화랑에서 내달 22일까지 열리는 ‘이중섭의 사랑, 가족’전에서다. 당시 맥타카트가 구입해 갔던 은지화 3점도 60년 만에 한국에 공개된다. 맥타카트로부터 기증받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모마)이 이례적으로 상업 갤러리 전시에 대여해 줬다.
전시를 기획한 미술평론가 최석태씨는 9일 “국내에서 이중섭 전시는 1972년, 99년에 이어 세 번째”라며 “그동안의 전시에서 이중섭의 간판이 되다시피 한 소 그림에 가려졌던 가족이란 테마를 조명해보자는 의도”라고 말했다.
모마 소장 은지화 중 2점은 ‘낙원의 가족’ ‘복숭아 밭에서 노는 아이들’ 등 가족이 도원에서 행복해 하는 모습을 그렸다. 나머지 한 점인 ‘신문 보는 사람들’은 당시 이승만 독재에 대한 비판을 담은 거라고 최씨는 설명했다. 은지화에는 기존 작품에서는 볼 수 없던 채색이 시도돼 눈길을 끈다.
결혼 전 마사코를 향한 연애 감정을 담은 엽서 그림도 처음 나왔다. 관제엽서에 그린 간결한 선묘의 남녀는 데생력이 탁월하다.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에는 불안함이, ‘활을 쏘는 남자’에는 사랑에 대한 확신이 읽힌다. 이중섭의 초창기 면모를 볼 수 있는 작품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가운데 이들 엽서 그림은 그 때를 연구할 수 있는 귀한 자료라고 한다. 이중섭이 아내와 두 아들에게 보낸 그림 편지 20여점 등을 포함해 총 70여점을 선보인다. 그가 쓴 일본어 편지 글씨도 가감 없이 공개됐다. 그동안 일부가 대중적 전시에 나왔다. 그러나 일본어가 왜곡된 인상을 줄 걸 우려해 번역된 내용과 그림만 소개됐었다.
“아빠는 닷새간 감기에 걸려서 누워 있지만 오늘은 아주 건강해졌으므로… 또 열심히 그림을 그려서… 어서 전람회를 열어 그림을 팔아 돈과 선물을 잔뜩 사 갈 테니… 건강하게 기다리고 있어주세요.”
1952년부터 떨어져 사는 가족에게 달려가고 싶은 가장의 마음은 이렇게 간절했다. 아내에게 쓴 편지는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다. 발가락이 못생겼다고 아내에게 ‘발가락군’ ‘아스파라거스군’이라는 애칭을 붙인 이 남자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정한 뽀뽀를 보내오”라며 애틋함을 전한다. 편지 가장자리엔 늘 그림을 그렸다. 가족이 두레상처럼 모여 있는 단란한 모습, 그림 그리는 자신의 모습이 단골로 등장했다. 그리움이 목젖까지 차오르는 날이면 배를 타고 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내기도 했다. 이남덕(95) 여사의 일생을 담은 기록영화 일부도 상연된다. 성인 5000원, 초중고생 3000원.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은박지에 꾹꾹 눌러 담은 가족 사랑
입력 2015-01-12 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