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TV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서 가나 출신 샘 오취리는 이렇게 토로했다. 자신의 나라에선 ‘검은 색(black)’에 불법, 거짓말, 더러운 것 등 온갖 나쁜 이미지가 다 들어있다고.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내달 15일까지 열리는 ‘아프리카 나우’전에 가보면 오취리의 격분을 표현한 듯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직설적 풍자화가 안톤 케네마이어가 내놓은 영어 단어 카드 같은 작품이 그렇다. 흑인 만화 캐릭터 아래 이런 뜻풀이가 있다. ‘검은: 형용사, ‘흰’의 반대말, 더러운, 지저분한, 어두운, 불법적인, 투미한, 밀수의….’
전시는 국내 첫 아프리카 현대미술전을 표방했다.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작가보다 그곳에 뿌리를 둔 영미권의 작가들이 더 많이 참가했다. 말하지만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들이 말하는 아프리카’가 주제다. 20여명 참여 작가 대부분은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갤러리 등에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모잠비크 내전 지역에서 발견된 AK47 소총, 로켓포, 권총 등 살상 무기로 만든 가면, 농구를 하는 흑인 용병 선수들이 교수대의 올가미에 공을 넣는 비디오 작품…. 일부는 이렇듯 직설적으로 서구 제국주의 근대사의 잔재에 비판을 가한다. 그러나 유쾌하게 펀치를 날리거나 익살맞게 비트는 작품들이 많아 시각적 즐거움을 주면서 주제를 되새김질하게 하는 힘이 있다.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 대표 작가로 선정됐던 크리스 오필리는 자신을 유명하게 한 코끼리 똥을 바른 유화 작품을 내놨다. 원시가 문명에 가하는 펀치다. 미국에서 잘 나가는 케힌데 와일리의 작품도 인상 싶다. 길거리 캐스팅한 평범한 흑인 여성에게 서구에서 추앙받은 왕이나 여왕의 근엄한 포즈를 취하게 한 작품은 제국주의에 대한 야유다. 흑인과 백인 남자들을 팬티만 입혀 찍은 사진작가 조디 비버는 여자 나체에 탐닉하는 서구 미술계를 한방 먹인다.
그런데, 스스로를 ‘혼성 잡종’이라고 부르는 영국 작가 잉카 쇼니바레에 이르면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에 대해 ‘이건 뭐야’ 하는 의문을 던지게 된다. 나이지리아 이민자 자손인 그는 식민지 수탈의 상징인 아프리카천을 활용해 작품을 해왔다. 이번에 나온 작품도 아프리카천 정장을 한 남자마네킹인데, 옷은 바지이면서 치맛자락이 달려있고 두상은 지구의로 대체돼 있다. 국적도 성별 구분도 모호해지는 지금의 세상에서 환경보호의 긴급함을 전투적 자세의 이 남자 마네킹은 온몸으로 말한다. 폭식, 탐욕 등을 다룬 ‘지옥’ 연작 사진은 인간 본질의 문제에 촉수를 내밀었음을 시사한다.
한국은 아프리카처럼 아픈 식민의 경험을 가진 나라다. 그러나 우리 현대미술사에선 이들 같은 식민지 유산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방학이다. 관성처럼 관람하는 서구의 ‘인상주의’ ‘르네상스’ 전시가 아니라 우리 근현대사를 돌아보게 하는 ‘아프리카 나우’전은 어떨까. 무료.
손영옥 선임기자
인종주의 향해 날리는 펀치… 阿출신 유명 작가 총출동 ‘아프리카 나우’ 展
입력 2015-01-12 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