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더 타임스’로부터 ‘100년에 한 번 나올 만한 목소리’라는 극찬을 받았다. 이어 동양인에게는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던 독일 자르브뤼켄 극장과 전속 계약을 맺으며 테너로서 인생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다 2005년 갑상선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으나 오히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그는 이듬해 일본의 성대 복원 전문의인 이시키 박사의 집도로 재수술을 받게 됐고, 그 과정에서 찬송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부르며 수많은 일본인들을 울렸다.
테너 배재철(46·영산콘서바토리·높은뜻광성교회) 교수의 삶을 그린 음악영화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감독 김상만)가 상영 중이다. 주인공 배우 유지태씨가 배 교수의 드라마 같은 삶을 열연했다. 영화는 화려한 오페라 무대와 음악이 어우러져 감동을 준다. “시련 후 영혼이 더 풍성해졌다”고 말하는 영화 속 실존인물 배 교수를 7일 서울 강남구 논현로 탑클래스뮤직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배우 유지태와 함께 완벽한 캐릭터 재현
영화는 기획부터 개봉까지 우여곡절을 거쳐 4년 만에 탄생했다. 배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음악 영화는 처음”이라면서 “시간과 공을 들인 만큼 섬세하게 잘 표현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배 교수와 그의 역할을 맡은 유씨는 작업 과정에서 자주 만나며 소통했다. 배 교수는 유씨의 촬영현장에도 함께 참석하며 옆에서 그를 응원했다. 배 교수를 처음 본 유씨는 “카리스마 있는 사자의 모습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배 교수의 세밀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성악과 영어, 일어 등 다방면에서 치열하게 노력했다. 유씨는 실제로 1년 동안 성악 연습에 매진했는데, 초반 한 달 동안 배 교수로부터 발성연습 등 성악의 기초를 직접 배웠다.
“유지태씨가 실제 주인공에게 누가 되지 않게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성악가의 삶을 무대에서 보여줘야 하는데, 무대가 아닌 일상의 삶, 그것도 아주 힘들 때의 모습도 연기 한다는 게 쉽지 않았겠죠. 그래서 자유롭게 캐릭터를 만들어 달라고 말했어요. 대신 음악영화인 만큼 노래를 하는 장면만큼은 완벽하게 소화해 달라고 부탁했죠.”
배 교수가 바라본 유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화면 속에서 보았던 모습과 같았어요. 굉장히 점잖고 진중해요. 사실 유지태씨 경우 다른 사람들보다 신체적인 비율이 굉장히 좋은데 일반 성악가의 모습에서 동떨어지죠. 오히려 키가 크고 목이 긴 사람들이 많이 하는 바리톤 베이스 쪽에 가까운 것 같아요.”
유 씨는 성악가의 모습을 연기로 완벽하게 재현했다. 유 씨가 연기한 노래부분은 배 교수 전성기 시절의 목소리이다.
배 교수는 유씨의 연기에 만족했다. “노래하는 부분에선 90% 이상의 제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줬어요. 고음을 내는 성악가들의 얼굴 표정, 몸의 컨디션 등에 대해 굉장히 연구를 많이 했어요. 이 같은 그의 노력에 고마울 뿐입니다.”
시련 후 하나님과의 관계부터 재점검
영화 제목은 그의 찬란했던 전성기를 알려준다. 배 교수는 서정적인 섬세함과 심장을 관통하는 듯 힘 있는 목소리를 함께 지닌 테너에게 주어지는 ‘리리코 스핀토’란 찬사를 들었다. 하지만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에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다. 의료진은 다시 노래를 부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성악가에게 목소리는 정체성이나 다름없는데, 제가 한순간에 없어진 거죠. 처음에는 말조차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때 겪은 절망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시련은 하나님과의 관계부터 재점검하게 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 성가대 등을 하면서 성장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세상 노래를 하나님보다 더 우선시했던 자신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는 극심한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놀랍게 평안함을 주셨다고 고백했다. 그런 가운데 소망을 가졌고 다시 노래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을 키웠던 것이다.
“제 목소리에 이상이 없었다면 제가 볼 수 없었던 것들을 계속 깨닫지 못했을 거예요. 가장 소중한 부분을 하나님께서 건드리셨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이죠. 질병을 통해 제 삶이 더 풍요로워졌다고 생각해요. 음악 하는 사람들 외에도 더 많은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고난에 대해 나누게 되었어요.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가 노래로 위로해주고, 저 또한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지요.”
현재 배 교수는 전성기 당시에 가졌던 목소리의 50% 정도를 회복한 상태다. 하나님 안에서 조금씩 회복하고 있는 지금의 과정이 그저 감사하다고 말했다. 고음을 요구하는 오페라 가수로는 무대에 설 수 없으나, 영산콘서바토리에서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또한 한국과 일본에서 다양한 무대를 통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사랑의 빚’ 진 일본에 대한 남다른 비전
그에겐 일본이란 나라가 남다르다. 배 교수는 “일본에서 많은 사랑의 빚을 졌다”고 말했다. 특히 제작사(보이스 팩토리) 대표 겸 매니저인 와지마 도타로씨는 그가 목소리를 되찾고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준 가족과 다름없는 사이다.
와지마씨는 그가 목소리를 잃었던 순간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재활할 수 있도록 도전을 줬다. 그가 2006년 이시키 노부히코 박사의 성대복원 수술을 권했다. 매니저와 팬들이 수술비를 모아 가능했던 일이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헌신 가운데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재기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사실 와지마씨는 크리스천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던 분이에요. 그럼에도 저에겐 전혀 내색하지 않았어요. 제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에게 평안함의 근원이 하나님이라고 종종 말하곤 했어요. 이 영화가 한·일 합작품인데, 공동제작자인 그가 제작 과정에서 재정적으로 너무 힘들었나 봐요. 나중에 말하기를 극단적인 것까지 생각했었대요. 그러나 그때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면서 신앙을 가졌어요. 저의 그 평안함을 맛본 것이죠. 지금은 (저보다) 더 하나님을 신뢰해요.”
배 교수와 그의 매니저 와지마씨의 우정은 현재 냉랭한 한·일 관계의 분위기 속에서 더욱 빛이 난다. 이들의 목표는 음악을 통해 한·일 관계를 회복시키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음악이란 코드가 정치적으로 풀지 못하는 것들을 풀 수 있어요. 특히 일본의 크리스천 인구가 현격하게 적은데 음악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하고 싶습니다.”
영화 포스터 문구 ‘모든 것을 잃은 순간, 최고의 무대가 시작된다’처럼 배 교수는 고난을 겪은 후 진정한 음악의 의미를 깨달았다. 최고보다 가슴으로부터 마음을 울리는 ‘진정성’ 있는 무대를 위해 오늘도 그는 열심히 노래를 부른다.
김아영 기자 cello08@kmib.co.kr
[이야기] 찬송 부르며 찾은 목소리… 영화 같은 삶 영화가 되다
입력 2015-01-10 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