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390여석의 금호아트홀이 꽉 들어찼다. 젊은 클래식 음악가의 연주를 보기 위해서였다.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27)는 1시간30분간의 연주를 마친 뒤 “좋은 프로그램 덕에 좋은 공연장에 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2015년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선정돼 이번 신년음악회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금호아시아나재단이 2013년 시작한 상주음악가 제도가 음악계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뛰어난 재능을 갖춘 클래식 영재들을 키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상주음악가란=해외에서는 미술, 공연, 클래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주프로그램이 활발하게 가동되고 있다. 상주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갤러리나 스튜디오, 공연장 등 예술 공간에 아티스트가 상주하며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다.
클래식에서 상주프로그램은 오케스트라나 공연장이 매년 음악가를 선정해 공연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독일 베를린필하모닉이나 미국 뉴욕필하모닉같은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나 영국 위그모어홀 등 유명 공연장에서도 상주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는 중이다. 위그모어홀은 클라리네티스트인 마틴 프뢰스트, 베를린필하모닉은 ‘테츨라프 콰르텟’을 이끌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뉴욕필하모닉은 리사 바티아쉬빌리를 상주음악가로 선정해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상주음악가 프로그램을 가장 먼저 도입한 곳은 금호아시아나재단이다. 이 재단의 김용연 부사장은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이 세계무대로 진출하고 세계적 음악가들과 경쟁하도록 돕는 좋은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상주음악가 프로그램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부모의 정신적·재정적 후원을 받아 성장해온 클래식 영재들은 25∼30세쯤 되면 세상 밖으로 나가 홀로 경쟁자들과 경쟁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면서 “성공적인 클래식 음악가의 길을 가려면 이 시기를 잘 극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호는 상주음악가에게 연 4∼6회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 고양아람누리도 2013년 상주예술단체 프로젝트로 체임버 오케스트라인 세종솔리이스츠를 선정해 야외 기념공연, 바이올리니스트 바담 레핀과의 협연 등을 진행했다. 안양문화예술재단도 실력 있는 연주자로 구성된 연주단체인 디토(DITTO) 오케스트라를 상주 예술단체로 확정한 바 있다.
◇성과는 있을까=국내 상주음악가 프로그램 역사는 이제 겨우 3년차에 불과하다. 성과를 얘기하기엔 성급함이 있지만 의미 있는 결과는 이미 보이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금호아트홀의 첫 번째 상주음악가였던 피아니스트 김다솔(26)은 2013년 한해 여섯 번의 공연을 통해 재즈부터 클래식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보여줬고, 지난 해 2월 앨런 길버트의 지휘로 내한한 뉴욕필하모닉과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3번을 협연했다. 이어 코리안심포니, 대구시립교향악단과도 무대를 꾸몄다. 또 서울시립교향악단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 노부스 콰르텟의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 클라라 주미강 등이 김다솔을 리사이틀 파트너로 선택했다. 지난해엔 유니버설 뮤직-스페라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했고, 올 상반기 첫 독주 음반을 발매할 예정이다.
2014년 금호 상주음악가였던 바이올리니스트 박혜윤(23)은 유럽과 일본에서 활동해 국내에선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상주음악가가 된 뒤 국내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알리게 됐다. 클래식 관계자는 “상주프로그램은 젊은 클래식 음악가들에게 본인이 원하는 내용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는 무대와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며 “1년간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팬도 확보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젊은 클래식 음악가 키우려면?… 상주음악가 제도가 답이다
입력 2015-01-12 0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