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유류업계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기름값을 내리라고 압박했다.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이익을 소비자들이 체감하도록 한다는 취지지만 기름값의 절반이 넘는 유류세는 건드리지 않은 채 업계에만 부담을 떠넘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에너지기술평가원에서 ‘석유·LPG 업계 간담회’를 열고 업계에 자발적으로 가격을 낮춰줄 것을 요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국제유가 하락이 국내 휘발유 가격 등에 적시에 반영되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 성격이다. 간담회엔 대한석유협회, 석유유통협회, 주유소협회, 알뜰주유소협회, 일반판매소협회, LPG산업협회, LPG판매중앙회 간부들이 참석했다.
정부는 같은 지역 안에서도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800원 이상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기름값을 추가로 낮출 여력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날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내 휘발유 가격은 최고가와 최저가 사이에 ℓ당 862원이나 차이가 났다. 정부는 오는 3월부터 주마다 각 구 단위로 가장 싼 주유소와 비싼 주유소를 공개하기로 했다.
그러나 업계 입장은 다르다. 이미 국제유가 하락분을 충분히 반영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정유사의 세전 휘발유 가격은 ℓ당 541.4원으로 연초에 비해 335.8원 낮아졌다. 같은 기간 국제 휘발유 가격 하락분(327.5원)보다 더 떨어진 것이다. 한국주유소협회 김문식 회장은 “산업부가 최고가와 최저가라는 일부 주유소의 극단적 가격만 비교해 업계 전체가 가격 인하를 외면하는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유류세는 손대지 않으면서 업계에만 가격 인하를 압박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김 회장은 “국제유가가 아무리 내려도 정액으로 고정된 유류세 때문에 유통 마진에서 기름값을 인하할 수 있는 여지는 크지 않다”며 “유가가 40달러로 떨어져도 세금 탓에 휘발유 가격이 ℓ당 1300원 이하로는 갈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주유소 휘발유의 평균 소비자 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월 초 49%에서 12월 말 기준 56%로 급증했다. 이 기간 세금은 전체 가격의 10%에 해당하는 부가가치세 변동에 따라 917.4원에서 890.9원으로 26.5원 내리는 데 그쳤다. 우리나라는 유가 등락에 상관없이 석유량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고정세율을 적용한다. 현재 휘발유에는 ℓ당 교통세 529원이 붙고, 교육세(교통세의 15%), 주행세(교통세의 26%)가 추가된다. 여기에 부가세(세후 가격의 10%)가 별도 부과된다. 소비자 부담의 절반이 세금이라는 소리다. 한 정유사 간부는 “문제는 유류세인데도 정부가 엉뚱한 곳을 가리키며 대중 영합적 정책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2011년 이명박정부 당시 ‘정유사 때리기’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당시 정부는 이 전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을 한 이후 알뜰주유소와 셀프주유소 설립을 적극 지원하는 등 휘발유 가격 인하를 압박했다.
정부는 업계의 유류세 인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채희봉 산업부 에너지산업정책관은 “세금은 재정 수입인데 유류세를 줄이면 다른 부분을 늘려야 한다”며 유류세 조정이 힘들다는 뜻을 내비쳤다.
세종=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정부 “기름값 내려라” 업계 “유류세부터 내려야”
입력 2015-01-10 0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