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靑 점입가경, 문건유출 件 다음은 항명인가

입력 2015-01-10 02:53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이 직속상관인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시를 정면 거부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운영위원회에 출석하라는 국회 요구도 일축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합법적 조치와 상관의 합리적 지시를 무시하는 것은 항명에 다름 아니다.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청와대의 기강해이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검찰은 허위로 판명했지만 ‘정윤회 문건’ 내용이 전혀 사실무근은 아니라는 생각마저 든다.

여야는 진통 끝에 9일 김 수석을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사건을 따질 국회 운영위에 출석시키기로 합의했고, 이에 따라 김 실장은 김 수석의 출석을 지시했다. 그러나 김 수석은 이를 거부하며 사의를 표명했다고 한다. 그동안 야당은 김 수석이 문건 유출자를 회유했다는 의혹을 줄기차게 제기해 왔다. 그렇다면 국회가 부르지 않더라도 국회 출석을 자청해 물의를 빚은 데 대해 사과하고 저간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밝혀야 옳았다.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대로 ‘정윤회 문건’ 내용이 허위라면 국회에 출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민정수석으로서 민정수석실발(發) ‘국정농단’ 파문을 수습하는 일이 완전히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돌출행동은 고위공직자의 올바른 처신이 아니다.

김 실장은 문건 유출에 대해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대단히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최초 언론 보도 후 40여일 만에 나온 청와대의 첫 공식 사과다. 이 사건은 사과만으로 해결될 성질의 사안이 아니다. 김 실장 한 사람이 책임지고 물러난다고 해서 끝날 문제도 아니다.

대대적인 인적 쇄신과 제도적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욱이 김 수석의 항명으로 청와대 인적 쇄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가 됐다. 이러한 조치 없이 대통령 유감 표명으로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면 더 큰 역풍에 직면할 뿐이다. 새누리당의 적극적 역할이 요구된다. 지금은 청와대 방패막이 역할을 자임할 때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쇄신과 변화를 요구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