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 그림산책] 주님 앞에 서 있는 고독한 영혼

입력 2015-01-10 02:35
최인호의 '기도', 2013
삶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사람의 생각과 처지에 따라 다양한 대답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인생을 작고 큰 염원과 기도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한 해가 시작되는 것만 해도 그렇다. 캘린더나 해맞이, 송구영신 같은 행사로 시작되는 게 아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샘물처럼 고여 오르는 간절한 바람, 기도들이 이미 한 해를 출발시키고 있다.

기도 없는 일상은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기에 삶이란 바로 기도이자 기도는 또한 믿음이다. 항상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는 그 원동력도 쉬지 않고 기도(살전 5:17)하는 데 있음을 주께서 분명히 가르쳐 주셨다.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은총은 바로 기도가 아닐까. 기도는 우리가 약할 때 강하게 하고 좌절과 아픔이 있을 때 소망을 갖게 하며 애통함과 고난 속에 있을 경우라도 위로를 받게 한다.

화가 최인호(1960∼)의 그림 중에서 ‘기도’라는 작품을 만난 것은 다소 의외였다. 평소 그는 조용하고 자기를 드러내지 않지만 어떤 의미에서 실존적 언어의 그림을 그려온 작가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그 자신이 예술가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약태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는 전업 작가이다. 그림만 그려서 삶을 살아가는 화가라는 말이다. 이 말은 그림을 팔아 생존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혼자 살아가는지라 그는 한 달에 60만원이면 된다고 했다. 그동안에는 그림 수 점을 팔면 삶은 지탱될 수가 있었는데, 근래에는 경제가 나빠지면서 전혀 그림을 팔지 못하고 있다 한다.

최인호는 국내 유수대학을 졸업하고 파리에서 국립장식미술학교도 수학하고 작가 생활도 하면서 13여년을 프랑스에 머물렀다. 귀국하여 ‘바라본다’ ‘숨어 있기 좋은 방’ ‘바람이 잔다’ ‘첫꿈’ ‘꿈꾸는 식물’ 전시를 가졌다. 이 과정에서의 삶은 버림의 과정이었다고도 말했다. 작가노트에 이런 기록이 있다.

“하루에 한 번씩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한다. 바다는 늘 의연했고, 평화로웠으며, 때론 좌절하여 주저앉고 싶은 내게 슬기롭게 대처하기를 주문하기도 했고, 생채기를 위무해주는 감미로운 바람을 보내주기도 했다. 사실 난 바다를 바라보며 많은 것을 버렸다. 하루에 한 개씩 잡스러움을 띄워 보내는 일상을 통해서 비로소 행복해지기 시작한 거 같다.”

심상용은 최인호의 ‘꿈꾸는 식물’ 전에 대한 평문에서 이 작가는 처음부터 숨 막힐 듯한 주변의 부조리 안에서 맞서 싸울 의사가 없다고 보았다. 전적으로 이런 세상의 희생자가 되기를 선택한 존재라는 말이다. 그러기에 그가 그린 인물이나 대상들의 특징은 있는 듯하면서 실재하지 않아 보인다. 그려진 듯하면서 그려져 있지 않다. 대부분의 인물들은 공간 안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다. 뭉크의 병리적 화면을 떠올려지게 한다.

여기 보이는 ‘기도’에서도 기도자는 철저히 고립되어 있는 홀로이다. 마치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기도하고 있으나 한편 갇혀 있는 듯한 느낌까지 준다. 진정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절대자 앞에 선 무력한 존재임을 확인한다. 그 둘 사이에는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내면에 꿈틀거리는 모순, 갈등, 욕망, 이중성, 위선과 같은 인간의 조건들이 잡힐 듯 떠올려진다. 붉은 옷을 입은 파란 얼굴의 기도자. 평화롭기보다 불안과 부끄러움이 드러나 있다. 오히려 울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는 어디 골방에 앉아 실컷 울고 싶지만 그럴 곳조차도 잃어가고 있다. 주님 앞에 혼자 서 있는 가장 정직한, 그리고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그런 순간 말이다.

이석우(겸재정선미술관장·경희대명예교수)